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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경기 골문 지킨 김병지, 힘내라 ‘사오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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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남 골키퍼 김병지가 26일 광양에서 열린 제주전에서 선발 출전해 프로축구 최초로 통산 7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이날 등번호 700번을 달고 장갑에는 숫자 700을 적고 나온 김병지가 동료들로부터 축하의 헹가래를 받고 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1970년 4월 8일생. 만 45세 김병지(전남)는 세 아들의 아버지다. 26일 전남 광양축구전용경기장. 김병지는 등번호 700번을 달고 그라운드에 섰다. 전남 드래곤즈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K리그 클래식 23라운드에 출장하면서 그가 골문을 지킨 경기는 700을 채웠다. 부인 김수연(42)씨와 세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김병지는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1992년 9월 6일 프로 무대 첫 골문을 지킨 이후 5개 팀을 거친 김병지는 프로축구 최초 통산 7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월급 80만원으로 시작한 연습생이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겪은 끝에 쌓은 금자탑이었다. 통산 700번째 경기에서 김병지는 골문을 듬직히 지켜 전남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전남 선수들은 전반 4분 공격수 이종호(23)의 선제골 직후 손가마를 만들어 김병지를 태워 대선배를 축하했다. ‘사오정(45세면 정년)’이라는 씁쓸한 신조어가 유행하는 시대에 김병지는 축구선수의 정년을 훌쩍 넘겨 또다른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지난 23일 김병지를 만났다.

 - 프로 선수 24년에 대한 점수를 매긴다면.

 “재미있는 골키퍼였다. 20대 땐 머리 염색도 하고, 모험적인 경기 운영을 좋아했다. 시대를 거스른다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때론 즐거움을 선사했다. 돌이켜보면 80점 정도 한 것 같다.”

 - 선수 생활을 이렇게 오래할 줄 알았나.

 “절대 아니다. 프로 데뷔 때 34세에 은퇴한 최강희(56) 전북 감독을 보고 32~34세 쯤에 은퇴하는 걸 머릿 속에 그렸다. 처절하게 나 자신을 다스린 덕분에 11년을 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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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김병지의 청소년기는 순탄치 않았다. 키가 작고, 별다른 경력이 없어 고교·대학 진학 때마다 밀려났다. 고교 졸업 후 경남 창원 금성산전에 취직해 직장인 팀에서 꿈을 키웠다. 테스트를 거쳐 국군체육부대에서 뛴 그는 1992년 7월 울산 현대의 추가 지명으로 프로가 될 수 있었다.

 - 축구를 계속 하려고 직장에 들어갔는데.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회사에 취직해 와이어로프, 도르래 등 부품들을 관리하는 검사실에서 근무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개인운동을 하는 날 보고 주변 사람들이 다 ‘미쳤다’고 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프로에 갈 수 있었다. 축구를 하면서 돈을 버는 게 신기했다. 프로 첫 계약금 1000만원은 전부 부모님께 드렸다.”

 - 24년동안 몸무게 78.5㎏을 유지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데.

 “프로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다. 술·담배를 하지 않고, 저녁 8시 이후 사적인 약속을 잡지 않는 등 100가지 금기 사항을 만들어 지켜왔다. 술·담배를 안 해도 잠을 자거나 아내와 대화를 나누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한 분야의 고수가 되려면 남들처럼 누릴 수 있는 걸 포기해야 한다. 스스로와 싸웠고, 나 자신을 라이벌이라 여겼다.”

 김병지는 1998년 미대 출신 김수연씨와 결혼해 아들 셋을 뒀다. ‘태백산맥’의 정기를 이어받으라는 뜻에서 첫째는 태백(16), 둘째는 산(13), 막내는 태산(8)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 세 아들 모두 축구를 한다.

 “고등학생 태백이는 공격수, 중학생 산이는 미드필더, 초등학생인 막내 태산이는 골키퍼를 한다. ‘김병지의 아들’이라는 부담이 클텐데 아들들이 ‘우리 멘토는 아빠’라고 당당히 말한다. 내가 ‘은퇴할까’하면 ‘아빠, 더 할 수 있잖아요’라고 응원해준다.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들이 있기에 행복하다.”

 김병지는 “사람들이 기억하기 쉬운 행운의 숫자를 모았다”며 777경기 출장을 다음 목표로 잡았다. 은퇴 후엔 지도자·에이전트·행정가 등 축구 관련 일을 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으로 남는 게 내 인생의 마지막 목표”라고 말했다.

 - 40대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느껴진다.

 “‘사오정’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40대면 자식들이 고등학생·대학생이 될 나이여서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많은 시기다. 타의에 의해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가족을 생각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대신 자신과 싸우고 나만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40대 가장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계속해서 전해드리고 싶다.”

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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