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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공무원 임용 대상자 병력 확인은 끔찍한 인권침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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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진료 내역은 가장 민감한 개인 정보이다. 그런데 이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마구 유통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공무원 임용에 이 자료를 갖다 쓰더니, 진료비 청구 프로그램 업체가 49억 건에 달하는 환자의 진료 정보를 빼내 외국 회사에 파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진료 정보가 엉뚱한 데로 새는 것을 걱정해 병원행을 망설여야 할 판이다.

 국정원이 고위공무원 임용 때 질병 이력을 통째로 받고 있는 관행은 끔찍한 인권침해다. 자기 직원뿐만 아니라 3급 이상의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판검사, 국립대 총장·학장 등이 대상이다.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에서 900여 건의 질병 정보를 받았다. 조현병(정신분열증)이나 법정 감염병 등의 병력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 개인의 동의를 받아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동의서에 “거부할 경우 신원조사를 진행할 수 없어 공직 임용 등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고 돼 있는데 누가 동의를 거부하겠는가.

 질병 정보에는 미혼 여성의 임신·출산 이력, 성병·암·우울증 등 민감한 정보가 수두룩하다. 현재 중병을 앓고 있다면 모를까 과거 병력은 공무원이 되는 데 하등의 문제가 될 게 없다. 혹시 우울증을 가려내려는 수단으로 쓴다면 더 문제다. 우울증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앓을 수 있는 ‘마음의 감기’다. 이를 문제 삼으면 치료를 기피하는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다.

 심지어 조현병도 치료 후 증상이 없이 기능이 회복된 상태이고 의사의 관리를 받고 있다면 직업 수행에 지장이 없다는 게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입장이다. 질병을 이유로 차별한다면 인권침해나 직업 선택의 자유 제한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정 필요하다면 조현병 치료 여부에 관한 자료만 요청해 전문가의 판단을 구하는 게 맞다.

 건강보험 진료비·조제료 청구 프로그램 회사가 질병 정보를 몰래 빼낼 때까지 정부가 뭘 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 프로그램은 정부가 인증해 준 것인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 이번 기회에 프로그램 관리를 대폭 강화하고 병원·약국의 환자 정보에 대한 책임의식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