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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숍서 머리 깎고 양복 맞추고 … ‘킹스맨’ 뺨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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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가 바버숍으로, 양복점은 테일러숍으로 부활했다. 외모를 가꾸고 개성을 드러내는 데 공을 들이는 남자들, 여미(yummy)족 덕분이다. 여미족은 패션에 관심이 많은 20~30대의 젊고(young), 도시(urban)에 사는 남성(male)을 뜻하는 신조어다. 이들은 자신을 가꾸는 데 시간과 돈을 쓰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중시한다. 자신의 패션 감각과 안목을 믿고 기성품 대신 개성 있는 스타일을 선택한다. 여미족의 생활을 들여다봤다.

 

이발소, 바버숍으로 부활

현대판 고급 이발소인 바버숍에서 남성 고객들이 이발과 면도를 하고 있다. [사진 NOTHING N
NOTHING]

회사원 정욱진(26)씨는 한 달에 한 번 바버숍에 간다. 바버숍은 서양식 고급 이발소다. 바버(이발사)와 상담을 통해 스타일을 결정하는데, 주로 옆머리는 짧게 자르고 앞머리는 부드럽게 올리는 슬릭백언더컷(slick back under cut) 스타일을 한다.

이발이 끝나면 면도가 시작된다. 바버숍에서는 옛날 이발소에서 하던 전통 습식 면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먼저 따뜻한 물수건을 얼굴에 얹어 모공을 열고 피부를 촉촉하게 만든다. 바버는 면도기 대신 파릇파릇하게 날이 선 면도칼을 잡는다. 물수건과 면도칼의 조합이 전기면도기와는 다른 정갈함을 만든다. 눈썹까지 손질하면 얼굴 단장은 마무리된다.

가르마를 타고 포마드(머릿기름)를 발라 머리를 완성하면, 1시간 남짓한 여정이 끝난다. 정씨는 “남성미가 깨어나는 느낌”이라면서 “동네 미용실보다 가격은 3~4배 비싸지만 나만을 위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돈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전통 방식으로 이발과 면도를 하는 바버숍은 여미족을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다. 2년 전 서울 강남과 한남동, 홍대 앞에 하나 둘씩 생기더니 최근에는 남성복 브랜드나 백화점이 매장 안에 바버숍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꾸미는 남성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바버숍도 증가 추세다.

바버숍 ‘헤아’의 이상윤 대표는 “이발소가 사라지면서 남자들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는데, 여성이 대부분인 미용실에 가는 걸 불편해 하는 남자가 많다. 멋을 추구하는 남성 인구가 늘면서 남성 전용 미용 공간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신사복 브랜드 캠브리지멤버스 매장 안에 입점한 바버숍 밤므의 이태직 대리는 “탈모가 진행중인 두피 상태를 미용실 여직원에게 보여주기 싫어하는 남성들도 마음 편하게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곳이 바버숍”이라면서 “두피 관리 서비스가 인기”라고 말했다.

바버숍은 대부분 예약제로 운영된다. 1대 1 서비스로 남자들이 작은 사치를 누릴 수 있게 해준다. 경찰·변호사·사업가·운동선수·대기업직원 등 다양한 직업군이 고루 찾는다고 한다. 첩보 영화 ‘킹스맨’ 속 영국 신사들처럼 남성미를 가다듬을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몸이 아닌, 생활에 맞춘 맞춤복

맞춤 반바지를 활용한 쿨비즈 패션 [사진 메종 드 무슈]

보험업에 종사하는 김두선(32)씨는 테일러숍에서 양복을 맞춰 입는다. 기성복은 몸에 잘 맞지 않아서다. “외근할 때 버스나 지하철을 자주 타는데, 팔을 올려 손잡이를 잡으면 재킷이 끼어 답답했다”고 한다. 테일러(양복장이)를 찾아가 상담하니 어깨 부분은 꼭 맞추되 소매통은 약간 넓은 디자인으로 맞춰줬다. 팔 움직임이 한결 편해졌다.

테일러숍에 가면 신체 치수 측정보다 상담을 먼저 받게 된다. 테일러숍 ‘메종 드 무슈’의 류형근 디자이너는 “상담을 통해 고객의 직업과 생활 습관을 아는 것이 먼저이고, 치수 재는 것은 맨 마지막 단계”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장시간 운전하는 고객은 앉은 자세가 편안하도록 허벅지 치수를 조정하고, 잘 닳지 않는 원단을 사용하는 식이다.

기업들이 시행하는 쿨비즈(여름철 출근 복장 간소화) 방침도 테일러숍 수요를 늘리고 있다. 테일러숍 ‘피노 테일러’의 안용혁 대표는 “리넨 같은 시원한 소재로 캐주얼 재킷을 맞추거나 비즈니스 캐주얼로 입을 수 있는 반바지를 맞추는 남성들이 있다”고 말했다. 가구 디자이너인 홍에녹(32)씨는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맞춤 정장을 즐겨입는다. 패션에 관심이 없던 친구들도 맞춤복을 알아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 사람만을 위한 맞춤복이지만 가격은 기성복과 비슷하거나 때로는 더 싸다. 정장 한 벌에 30만원대도 있다. 비결은 마케팅비와 인건비 등을 절감하는 데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한 여미족이 주고객층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류 디자이너는 “블로그 운영과 입 소문 외에 따로 홍보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고객 상담과 디자인 같은 중요한 공정은 스스로 하기 때문에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구두와 소품도 사지 않고 맞춘다

여미족이 즐겨 신는 맞춤 구두 [사진 로슈맨]

회사원 박현건(33)씨는 최근 회사 근처 카페에서 구두를 맞췄다. 한 구두 브랜드의 출장 맞춤 서비스를 이용했다. 가죽과 굽 소재를 선택할 수 있는 맞춤 구두의 매력이 개성을 추구하는 여미족을 끌어들이고 있다. 맞춤 구두업체 ‘디 아마레’ 김성민 대표는 “고객들이 디자인이나 색깔, 가죽 질감 등 세세한 부분까지 챙긴다. 운동화 밑창은 그대로 두고 윗부분만 가죽으로 덮어 구두처럼 만들어달라는 고객도 있었다”고 말했다.

구두를 맞출 때도 상담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개성뿐 아니라 생활 습관과 의뢰인의 성격도 디자인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성격이 급한 편이라면 발에 딱 맞게 하고, 느긋한 사람이라면 치수도 여유 있게 조정해야 오래 신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맞춤 구두업체 ‘로슈맨’의 김희숙 대표는 “발은 시간이 지나면 붓기 때문에 치수는 늦은 오후에 재는 것이 정확하다”고 조언했다. 가죽을 도매상에서 직접 공수하고, 장인들과 직접 계약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서 기성화와 비슷한 가격대(10만~20만원대)에도 맞출 수 있다.

소품이나 가방을 직접 만드는 여미족도 있다. 가죽으로 액세서리나 지갑·가방을 만드는 문화센터 가죽공예 교실은 남자들로 북적댄다. 한국문화센터 하우영 강사는 “스스로 개성을 담아 만든 소품이 곧 명품이라는 인식이 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풀잎문화센터 박경옥 사무국장은 “가죽공예 강좌는 꾸준히 수강하는 남성 수강생들이 있다”고 말했다.

맞춤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맞춤이라고 주장하는 업체도 난립하고 있다. 테일러숍을 운영하는 한 디자이너는 “치수 재는 교육만 받은 사람들이 맞춤 양복점이라며 프랜차이즈 점포를 연다. 기성복과 차이가 없는 무늬만 맞춤인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김성훈 인턴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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