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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추적기술이 찾아낸 괴물 투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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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을 추적하는 레이더 기술이 야구와 만났다. '트랙맨 베이스볼 스타디움(트랙맨)'은 덴마크의 미사일 추적용 3D 도플러 레이더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투수가 공을 놓는 지점부터 타자가 때린 공이 그라운드에 처음 바운드할 때까지 모든 궤적과 선수의 움직임을 추적해 데이터로 만드는 장치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올해 트랙맨 기술을 도입했다.

본지는 서울 목동구장에 설치된 '트랙맨'을 통해 제49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중앙일보·일간스포츠·대한야구협회 주최, 케이토토 협찬) 8강전까지 총 26경기를 분석했다. 스포츠 콘텐트 제작사 '애슬릿미디어'는 올해 초 트랙맨을 도입해 잠실과 목동구장에 설치했다. 트랙맨으로 고교야구 대회의 데이터를 수집한 건 대통령배가 처음이다. 장민규 애슬릿미디어 이사는 "프로야구의 근간인 아마추어 야구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야구의 균형 발전을 위해 아마야구의 정확한 데이터 수집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트랙맨을 통해 본 올해 대통령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경기고 박준영(18)이다. 경기고는 22일 준결승에서 성남고에 2-7로 졌지만, 박준영은 1-6으로 뒤진 3회 초 마운드에 올라 6과3분의1이닝을 1실점(비자책)으로 막아냈다. 타석에서는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이달 초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에 1차 지명된 박준영은 투타에서 모두 빼어난 재능을 갖췄다. 우투우타인 박준영은 4경기에 모두 4번타자·유격수로 선발 출장했다. 팀이 위기에 빠지면 마운드에 올라 2승, 평균자책점 1.10을 기록했다.

트랙맨은 '투수 박준영'으로부터 의미 있는 데이터를 많이 뽑아냈다. 그는 평균 시속 143㎞의 빠른 직구(54%)와 낙차 큰 커브(32%)를 섞어 던졌다. 지난 6월 2일부터 7월 21일까지 잠실·목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를 트랙맨으로 분석한 결과 투수 140명의 직구 평균 시속은 143.3㎞였다. 박준영의 직구 스피드는 프로 선수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프로야구에서 선발 투수로 활약 중인 송승준(롯데)·윤희상(SK)·옥스프링(kt)과 비슷한 수준이다. 박준영은 장충고와의 8강전에서는 이번 대회 최고 스피드인 시속 148㎞를 찍었다.

박준영의 직구는 2234회의 분당회전수(rpm)를 기록했다. 대통령배 평균인 2087rpm에 비해 월등히 높았고, 프로야구 평균인 2272rpm과도 큰 차이가 없었다. 회전이 많이 걸리는 공일수록 타자들이 배트에 맞히기 어렵다. 박준영은 이번 대회에서 16과3분의1이닝을 던져 20개의 삼진을 뽑아냈다. 공의 스피드와 회전력이 모두 뛰어난 덕분이다.

박준영은 투수로서 다소 마른 체격(키 1m81㎝, 체중 75㎏)이다. 힘의 원천은 체격이 아닌 투구폼에 있다. 박준영은 왼 다리를 높게 올려서 힘을 모은 뒤 길게 앞으로 내딛으면서 공을 던진다. 투수판에서부터 손끝에서 공을 놓는 지점(릴리스포인트)까지의 거리가 2.03m로 프로야구 평균인 1.82m보다 20㎝ 가량 길다. 투수가 릴리스포인트를 앞으로 끌고 나갈수록 타자가 느끼는 스피드가 증가한다.

릴리스포인트는 제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을 놓는 지점이 일정해야 안정적인 제구를 할 수 있다. 박준영은 릴리스포인트의 범위가 5㎝로 프로야구 투수들의 평균인 12㎝보다 좁게 형성돼 있다. 물론 프로 투수들은 다양한 구종을 던지기에 편차가 크다. 박준영은 직구와 커브를 매우 안정적으로 던졌다는 결론이 나온다. 박준영은 이번 대회에서 20이닝을 던지는 동안 볼넷을 5개만 내줬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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