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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년 양조장이 예술마을로 … 런던의 뒷골목 리모델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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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붉은 벽돌을 쌓아올린 49m 높이의 굴뚝은 트루먼 브루어리의 상징이다. 런던은 350년간 양조장이었던 이곳을 예술가 마을로 꾸몄다. [런던=장혁진 기자]

지난 4월 런던 북동부 이스트엔드(Eastend) 지역의 한 골목가.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낡은 공장에 특이한 복장의 젊은 예술가들이 이따금씩 드나들었다. 여기선 장난감 블록 아티스트 나단 사와야의 ‘레고 아트’ 기획전이 열리는 중이었다. 큐레이터인 데릭 무어(52)는 “이곳은 과거 맥주 창고로 쓰이던 공간을 미술관으로 개조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 곳곳엔 화물용 엘리베이터와 각종 기계 설비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1666년 지어진 ‘트루먼 브루어리’는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양조장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등장할 정도로 명성이 높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결국 1988년 공장 문이 닫혔다.

 음침한 뒷골목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 건 데이미언 허스트를 비롯한 런던의 팝아티스트들이 나서면서였다. 창의적인 벽화와 즉석 공연이 거리를 채우면서 마을엔 활기가 넘쳤다. 런던시는 공장 내부를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업장·전시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런던은 공장·발전소 등 버려진 기반시설을 재활용하는 데 가장 앞서 나간 도시다. 영국의 건축가들은 거대한 기계를 들여놓기 위해 천장을 높게, 채광이 잘되도록 설계한 산업용 건물 구조에 주목했다. 공연을 열거나 설치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데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템스 강변의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변신시킨 ‘테이트모던’은 이미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연간 방문객 500만명 중 20%가 미술 전시와 상관없이 건물 자체를 구경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런던의 실험정신은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카이샤 포럼’은 2007년 테이트모던의 건축가들이 구도심에 방치된 화력발전소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개조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은 85년간 가스 저장고로 쓰이던 건물 4동을 주상복합시설 ‘가소메터 시티’로 조성했다.

우리의 경우 서울시·문화체육관광부가 당인리 화력발전소를 창작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00년 폐쇄된 마포석유비축기지는 내년 말 상설 공연장으로 다시 문을 연다. 김정후 한양대 도시대학원 특임교수는 “유럽의 사례들은 주변과의 조화, 시민 소통을 가장 먼저 고민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우리도 버려진 산업시설을 문화시설로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주거·상업·교육시설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런던=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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