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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아 고맙다, 웃으며 떠난 김응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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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응용 전 한화 감독(오른쪽 둘째)이 18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시구를 한 뒤 후배들의 인사를 받고 있다. [수원=양광삼 기자]

은퇴를 했어도 급한 성격은 여전했다.

 프로야구 최다승(통산 1567승68무1300패) 사령탑인 김응용(74) 전 감독은 지난 18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15 올스타전 시구자로 나섰다. 그는 공을 잡자마자 포수 선동열(52·전 KIA 감독)을 향해 던졌다. 멋지게 폼을 잡거나 팬들에게 인사할 여유는 여전히 없었다. 중계방송도 그의 시구 장면을 놓쳐 재생화면으로 보여줬다. “공이 제대로 안 갈까봐 걱정했지. 선수 출신이 원바운드로 던지면 안 되니까.”

 김 전 감독은 나눔 올스타 명예감독으로 1이닝 동안 벤치에 앉았다. 1회 초 2사 후 드림 올스타 최형우가 2루 땅볼을 치고 1루에서 세이프 판정을 받자 그라운드로 나와 ‘심판 합의판정’을 요청했다. 현역 시절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했던 그가 팬들에게 마지막 팬서비스를 한 것이다. 김 전 감독은 “후배 감독들이 합의판정을 요청하라고 해서 나갔지. 그런데 올스타전엔 그런 게 없다는 거야”라며 웃었다.

 김 전 감독은 만 42세였던 1983년 해태 지휘봉을 잡아 2000년 팀을 떠날 때까지 9차례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2002년에는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10차례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그의 인생이 곧 프로야구의 역사였다. 2005년부터 6년간 그는 삼성 야구단 사장을 맡았다.

 김 전 감독은 72세 나이에 한화 지휘봉을 잡았다. 8년 만에 현장에 돌아왔으나 2년 내내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명예로운 은퇴식을 열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마지막 2년이 앞선 30년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후배들이 ‘김응용’을 기억하는 이벤트를 만든 건 그래서였다.

 김 전 감독은 경기도 용인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일하고 있다. 틈나는 대로 야구 장학사업도 한다. 그러나 야구가 그리워질까봐 TV는 거의 보지 않는다고 한다. 10개 구단 감독들은 1300만원을 모아 멋진 트로피도 선물했다.

김 전 감독은 “후배들에게 고맙고, 또 미안하다. (긴장돼서)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고 말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고별사는 역시 투박했다. “좋은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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