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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이 만난 사람] 정계복귀설 김민석 전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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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야권 재편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개편 논의 속 주목받는 곳이 민주당이다. 지난해 3월 민주통합당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당명을 바꾸자 “정통 야당의 상징인 민주당을 살리자”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당이다. 국회의원 한 명 없는 원외정당인 민주당에 관심이 쏠리는 건 ‘원조 486’ 격인 김민석(52) 전 의원과의 관계 때문이다. “김 전 의원이 전면에 나서진 않고 있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여의도에 퍼져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최근 전국 225개 선거구의 지역위원장 모집에 나섰다. 여기에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손발이 묶였던 김 전 의원이 다음달 피선거권을 회복한다는 사실까지 오버랩되면서 미묘한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가 다시 정치 전면에 등장할 것인가. 김 전 의원은 “정치란 게 하고 싶다고 하고 안 한다고 해서 안 하게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내가 안 하면 안 되겠다’라는 느낌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면 그때 하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역할에 대해선 “야권 재편 논의 과정의 등대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중앙일보사에서 진행됐다.

김민석 전 의원은 정몽준 캠프 합류로 철새 논란이 일었던 데 대해 “단일화로 정권 창출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지만 지혜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또 “지혜롭지 못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데 대해선 많은 사과를 했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조문규 기자]

 - 민주당 창당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하는데.

 “대표(강신성)·사무총장(김민석·동명이인) 등과 가까운 사이인 건 맞다. 지난해 새정치연합이 만들어질 때 주변 사람들이 민주당이란 이름이 사라지는 걸 안타까워했다. 사람들이 민주당을 정통 야당의 상징이라고 보는 것 아닌가. 민주당은 이름이기도 하고 상징이기도 하고 정통성·기치이기도 하다. 민주당이란 귀한 이름을 잘 보존하자는 충심에서 시작한 거다. 당원 5000명을 모으고, 당비 10만원씩 내는 게 쉽지 않다. 나도 박물관 하는 기분으로, 아니면 민주당 기념사업회 하는 기분으로 잘 살리면 좋지 않으냐고 창당을 권했다.”

 - 어떤 사람들이 참여했나.

 “DJ(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 같이했던 선량한 야당 당원들이다. 전면에 나서서 정치를 하거나 당직을 갖진 않았지만 민주당이란 이름에 무한 애정이 있는 분들로, 중소기업 하는 사람들이 많고 노선은 전형적인 중도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 창당 때부터 김 전 의원이 정계 복귀의 발판으로 삼기 위한 것이란 소문이 나돌았다.

 “그 정도를 내다볼 수 있었다면 정말 존경스럽다. 그땐 야권 재편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을 때다. 우린 20대부터 민주당으로 시작했고 민주당에서 정치를 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없어져 길바닥에 돌아다니는 건 그렇잖아? 딱 이 정서에서 시작한 거다. 그걸 지금 상황과 연결 짓는 건 무리고 특히 나의 문제는 전혀 별개다.”

 - 내년 총선에 민주당이 일제히 후보를 낼 계획인가.

 “정당법이 바뀌어서 선거에 후보를 1명 이상 내기만 하면 당이 없어지지 않는다. 민주당이 아마 최초의 100년 정당이 될 거다. 당헌에 민주당이란 이름을 바꿀 수 없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란 가치를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이름을 바꾸려는 합당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한 건데, 선거 때 이합집산하는 정당은 아니라는 뜻이다. 후보는 낼 걸로 본다. 현실적인 선택이든 기념비적 가치관을 지키기 위한 것이든.”

 - 8월 중순이면 피선거권을 회복한다. 정치를 다시 시작하나.

 “정치는 하고 싶다고 하고 절대 안 한다고 해서 안 하게 되는 게 아니잖나. 어릴 적부터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가야 되는가 하는 공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살았는데 그걸 어떻게 버리겠나. 내가 꼭 정치를 해야겠다는 것보다는 내가 안 하면 안 된다 하는 필요성을 느낄 때, 그런 느낌을 온몸으로 느낄 때 한다는 생각이다.”

 - 지금이 그때라고 느끼지 않나.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는 절제하듯 말을 이어 갔다) 들기도 한다. 뭘 좀 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야당을 했던 사람으로서 아주 솔직한 심정은 야당은 혁신 갖곤 안 된다, 혁명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야당을 보고 있으면 분노가 인다.”

 - 무엇에 대한 분노인가.

 “2012년 총선 전에 『3승』이란 책을 냈다. 대부분 야당이 총선에서 이긴다고 할 때다. 책 서문에 공천,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를 잘못 다루면 뒤집힐 거라고 썼다. 한명숙·이해찬 전 총리 등 당시 주력군들이 과거에 했던 얘기가 있는데 설명 없이 뒤바꾸면 반드시 문제가 될 것 같더라. 아니나 다를까 이길 것 같은 선거가 뒤집히더라.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도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니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를 주도해본 경험이 있으니까…. 지방선거도 솔직히 세월호 때문에 살아난 거 아닌가. 근데 그걸 엉망으로 만들더라. 광화문에서 피케팅하는 의원들을 중국 관광객이 구경하는 걸 보고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다. 의원들이 정말 뭔가 걸고 싸우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걸 국민들이 다 안다. 내가 이렇게 느끼는데 보통 사람들은 얼마나 열받겠나.”

 - 야당이 왜 이 지경이 됐다고 보나.

 “중도냐 진보냐는 쓸데없는 말장난이다. 이미 중도개혁이란 공감대가 있는데 유능하지도, 확실하지도 못하니 문제다. ‘이름은 민주당, 가치는 합리적 개혁과 중도개혁, 사람은 포괄적으로’란 공감대가 있는 것 아닌가. 야당이 중도를 못하거나 진보를 못해서 이 모양이 됐다고 보지 않는다. 강력하고 유능한 리더를 배출하지 못해서 이렇게 된 거다.”

 DJ에 의해 발탁돼 스물여덟에 정치에 입문한 김 전 의원은 ‘486 정치인’의 원조 격이다. 하지만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한” 순탄치 않은 부침의 길을 걸어왔다. 32세 때인 1996년 총선 때 영등포을에서 당선되면서 일약 전국적 스타로 부상했다. 재선에 성공했고 2002년 지방선거 때는 집권당 최연소 서울시장 후보(당시 38세)로 선출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맞붙은 본선에서 패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16대 대선을 앞두고 정몽준 후보 진영에 합류해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추진했으나 진보 진영으로부터 ‘철새 정치인’이란 공격을 받았다. 정치자금법 위반 논란이 일면서 18대 총선 땐 공천도 받지 못했다. 이후 민주당 최고위원에 선출돼 재기하는 듯했으나 불법 정치자금 문제에 휘말리면서 정치 현장을 떠나야 했다.

 - 유독 심한 부침을 겪었다.

 “얼마 전 조훈현 국수를 만났다. 그는 세계 최정상에 올랐다가 제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무관에 완전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삶을 살았다. 나도 30대에 의원 두 번 하고 집권당에서 총재 비서실장, 서울시장 후보를 했으니까 잘나갔던 편이다. 완전 바닥도 쳐봤다. 복기를 해보니 비교적 젊은 나이에 겪어본 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 국수에게 ‘뭐가 좋아졌느냐’고 물으니 ‘지는 게 익숙해졌다’고 하더라. 예전엔 이기는 게 기본이었는데 지금은 지는 걸 기본으로 해서 이기면 좋고 그걸 즐기게 되는 여유가 생겼다고 하더라. 나도 조금 여유는 생긴 거 같다.”

 - 득도한 사람 같다.

 “대한민국 리더가 되려면 오바마·시진핑·푸틴·아베·김정은하고 수 싸움을 할 수 있어야 한다. ‘30대의 김민석’은 자신이 없었다. 그 정도는 아니란 걸 아니까 편치 않았다. 그때에 비해 더 실력이 쌓였다고 보진 않지만 마음은 편해진 거 같다.”

 -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젠가.

 “정치적 사건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인간관계에서 신뢰가 흔들릴 때가 가장 어려웠다. 또 (올해 초) 이혼 후 공동 양육하기로 한 늦둥이 아들이 당분간 엄마가 일하는 인도네시아로 떠나 있게 됐다. 그 상실감과 고통을 견디기 힘들더라. 아침 등굣길을 아들과 함께 걷는 즐거움이 정치를 떠나 있는 동안 발견한 최고의 기쁨이었다.”

 - 요즘 ‘직업’은 뭔가.

 “개인적으론 감독이라 불리는 걸 제일 좋아한다. 입봉해서 15분짜리 ‘독거 가족’을 만들었는데 노인영화제에서 입상도 했다. 다큐멘터리는 현장과 대안이 특징인데 아주 매력적이다. 단국대 행정대학원에 있으면서 교양 강의도 하고 최고위 과정(코리아리더십스쿨)을 만들어 리더십 교육도 했다. 아이들 나눔 교육을 하는 NGO도 돕고 있다. 미국에서 변호사를 따 외국 기업 한두 곳의 자문에 응하고 있다. 책을 원 없이 읽고 쓰기도 하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

 다시 정치 이슈로 돌아왔다.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것이냐”는 물음에 김 전 의원은 “정치의 틀이나 판을 바꿔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많이 해봤다”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에 답이 들어 있다.

 “개인적인 출마 여부는 별로 고민 안 한다. 그것보다 누가 집권하든 큰 문제없이 국가가 안정적으로 갈 수 있는 정치 통합의 틀이 만들어져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일이 너무 힘들어 두세 번 하고 못하겠다고 할 정도로 하중이 있는 정치, 일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비교적 소박하게 일하게 하는 정치의 틀과 판을 바꾸는 걸 해보면 좋겠다는 욕구는 굉장히 강해진 것 같다.”

[S BOX] 한·중·일·러 리더 참여 ‘뉴실크로드포럼’ 만들어 민간외교

“실크로드 연결선상에 있는 나라들끼리 교류하고 친선을 도모하는 민간 외교 채널로 발전되길 희망한다.”

 김민석 전 의원이 1년여 전부터 준비해온 ‘뉴실크로드포럼’이 최근 스위스에 법인 등록을 마쳤다. 뉴실크로드포럼은 말 그대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러시아·일본 등 실크로드 문명권의 정치·경제계 리더들이 한데 모여 서로 학술 교류와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국제 포럼이다. 매년 세계 각국 정치계·관계·재계 수뇌들이 모여 정보를 교류하고 세계 경제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을 벤치마킹했다.

 김 전 의원과 오랜 친분이 있는 해외 인사들을 매개로 우선 출범하고 향후 참가자를 확대하겠다는 생각이다. 김 전 의원 자신이 한국 대표를 맡고 각국별로 대표를 두는 방식이라고 한다. 일본의 경우 ‘고노 담화’의 주역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의 아들 고노 다로(河野太?) 중의원 의원이 대표로 참여한다. 중국·러시아 등의 대표와 국내 정치권·재계 멤버 선임이 마무리되는 대로 9~10월 첫 포럼을 열 계획이다.

 김 전 의원은 “정치·경제 등 각 분야의 핵심에서 각각의 나라를 이끌어갈 사람 중 한국 친화적인 인사들을 모아 교류를 넓혀 가는 민간 외교가 필요하다”며 “길게 보고 가는 민간 교류체가 필요한데 아무도 하지 않아 내가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중립적이고 민간 외교적 색채를 강조하려고 스위스에 법인 등록을 했다는 설명이다.

글=이정민 정치·국제 에디터 jmlee@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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