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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하세요] 사노맹 사건 복역 백태웅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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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백태웅 교수는 “동아시아지역에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협력관계가 구축될 때 지역 내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며 “인권법원 등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은 게 나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사진 백태웅]

1980년대 후반 박노해 시인 등과 함께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을 결성했다 체포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던 백태웅(53)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92년부터 6년4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던 그는 99년 김대중 정부 시절 특별사면을 받고 석방된 뒤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로부터 16년이 흘렀다. 그는 지난 3일 유엔 인권이사회 강제실종 실무그룹 위원으로 뽑혔다. 유학기간 중 법학을 공부한 그는 캐나다 브리시티컬럼비아대 교수를 거쳐 지금은 하와이대에서 국제 인권법, 국제 형사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백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1992년 5월 사노맹 사건으로 구속 수감되는 당시
사노맹 중앙위원장 백태웅씨(가운데). [중앙포토] -유엔 인권기구 위원으로 선출된 소감은.

  “국제인권법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영광이다. 강제실종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를 유엔에 보고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한국 전쟁 때의 강제 납북 문제에 관심이 있다. 인도적 사안이기 때문에 북한도 협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인권에 관심이 많았나.

  “북한의 형사소송법 등 형사 절차를 연구해왔다. 인권 문제의 근원을 찾고 해결 가능한 대안을 찾기 위해서다. 한국도 인권이 완전히 무시되던 시대를 경험해 왔고, 지금은 그 부분을 조금씩 넘어가고 있는 단계다. 북한도 한국과 같은 길을 갈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 한국사회와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떻게 다른가.

  “70~80년대는 권위주의 시대의 전형이었다. 상당 부분 민주화를 이뤘지만 아직도 민주주의가 완벽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제가 과거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한건 아닌 거 같다.”

 -사노맹 사건으로 90년대에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한국사회를 봤고, 다른 개인적 경험을 갖고 있다. 그리고 모두 각자의 상처가 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저의 과거 이야기가 뒤풀이처럼 거론되는 건 저한테도 안 좋고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은 아닌거 같다. 다만 과거 내가 했던 활동에 후회는 없다. 한국사회의 학생운동은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희망을 찾기 위한 이상주의적인 몸부림이었다. 한 사람이 이기심을 떠나 오로지 사회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연대하고 협력하는 노력을 하는 과정이었다. 지금도 그것이 제 초심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전문가로서 대안을 갖고 활동하며 성과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미국으로 간 지 16년이 지났다.

 “제 자신의 과거 활동과 한국 사회 전체를 돌아보는 짧은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유학 중 많은것을 배우고 고민했지만 우리 사회가 열어 나가야 할 전망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미국 유학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라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서 활동할 생각은.

 “한국으로 옮겨서 일을 할 기회가 없었다. 적당한 일과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맞지 않았다.“

 -정치권 영입대상으로 꼽히곤 하는데.

 “정치인 속에 한 사람 보태는 게 한국 사회에 얼마나 의미가 있겠느냐는 회의를 갖고 있다. 한국 사회는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 새로운 시대를 누군가 만들어 나가길 바라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너무 직접적인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새로운 시대를 기다린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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