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중국의 기술 추격, 반도체도 안심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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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국 칭화유니그룹이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주당 21달러씩, 모두 230억 달러(약 25조9900억원)에 회사를 사들이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칭화유니그룹은 칭화대가 1988년 설립한 중국 최대 반도체 설계업체다. 국립대가 대주주인, 사실상 국영기업이다. 칭화유니그룹이 제시한 금액은 중국의 해외 인수합병(M&A)으론 최대였던 2013년 상하이인터내셔널홀딩스의 미 육가공업체 스미스필드푸즈 인수가(71억 달러)의 세 배 이상이다.

 성사 가능성은 사실 크지 않아 보인다. 시장에선 칭화유니그룹이 제시한 가격이 현재 주가보다 그리 높지 않아 경영진과 주주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한다. 미국 정부가 경제안보상의 문제로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관측도 유력하다. 한때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회사였던 독일의 인피니온도 오랜 적자에 시달렸지만 해외 매각 대신 청산을 택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같은 관련 회사들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란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우리 경제에서 반도체가 가진 의미와 중요성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D램으로 대표 되는 메모리 반도체는 부동의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산업 중 하나다. 특히 D램 분야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수요의 70% 이상을 공급한다.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339억8000만 달러어치로, 전체의 5.9%를 차지했다. 전체 수출이 감소한 올 상반기에도 5%가 넘는 수출 증가율을 보이며 무역수지 흑자의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산업에 중국이 도전하고 있다. 그것도 국가가 주도한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반도체 굴기(?起)’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산업의 숙원은 ‘산업의 쌀’인 반도체, 그 중에서도 D램으로 대표되는 메모리 반도체의 자급이다. 이를 위해 10년 전부터 애써 왔지만 높은 기술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자 지난해 막강한 권한을 가진 ‘반도체 영도소조’를 조직하고 22조원 규모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했다. 앞으로 10년간 반도체에 1조 위안(183조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마이크론 인수시도 역시 이 같은 움직임의 하나다. ‘베끼고 배우는’ 전통적인 방식의 기술 추격뿐 아니라 M&A를 통해 단숨에 격차를 따라잡는 방식이 더욱 자주 시도될 것이라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이런 추격은 앞으로 더 빨라지고 강해질 것이다. 이미 LCD는 중국에 추월당했고, 자동차도 중국 현지업체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마이크론 인수 시도에서 보듯 우리가 가장 앞서 있다고 여겼던 산업까지도 위협을 느끼게 됐다. 벗어나는 길은 끊임없는 연구개발(R&D)과 혁신밖에 없다. 가진 기술을 지키고 인력 유출을 막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산업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고민하고 협업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