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메르스에 수조원 날리고도 … 복지부, 질병본부 독립 외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 내 위기대응센터가 생기고 비정규직 역학조사관 32명이 정규직으로 바뀌는 방안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후속 대책으로 추진되고 있다. 위기대응센터장은 국장급이 맡고 그 아래 대응반(또는 과) 3개가 설치되며, 17개 광역 시·도에 지방공무원으로 구성된 위기대응팀이 꾸려진다.

 복수의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5일 “메르스가 종식 국면으로 접어듦에 따라 후속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14일 이 방안을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보고했다. 23일께 공청회가 열린다.

 후속 대책에 따르면 질본은 지금처럼 복지부 산하기관으로 남는다. 메르스 방역에 실패한 복지부가 인사·예산 등 전반적인 운영을 계속 통제한다. 복지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지방청처럼 6개 정도의 지역본부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이 역시 없던 일이 됐다. 대신 광역 시·도 위기대응팀(팀당 8~9명)을 신설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역본부를 만들면 질본 독립 문제가 불거질 것을 우려해 검토 단계에서 무산된 것으로 안다. 보건소를 지방자치단체 소속으로 두는 현재의 시스템에선 위기대응팀이 있어봐야 달라질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복지부안에 대해 “안 하는 것만도 못한 개혁”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질본을 최소한 질병관리청(질병관리처)으로 승격해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거나 보건 담당 차관을 신설할 것을 주문했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학장은 “행정고시 출신의 관료들이 자신들의 권한을 그대로 둔 채 미봉책으로 일관하면서 근본에 손을 대지 않았다. 메르스로 인해 수조원을 날려 놓고서도 변한 게 없다. 이 안대로 가면 제 2의 메르스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후속대책은 질본 운영과 관련한 고질적인 문제도 손대지 않았다. 질본의 생명의과학센터장은 2011년 이후 공석이다. 과장급이 직무대리를 겸한다. 고위공무원단(국장급 고위직) 정원을 복지부가 가져가면서 벌어진 일이다. 전병율(전 질병관리본부장)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질본의 일 잘하는 사람은 복지부가 맘대로 데려간다”고 말했다. 이 규모가 20~30명에 달한다. 게다가 질병예방센터장은 복지부의 비(非)고시 출신 국장 승진용으로 활용했다. 전 교수는 “맘대로 조직을 주무르는데 전문성이 쌓일 리 없고 본부장이 소신껏 일할 수 없다. 그런 결과가 쌓여 이번 메르스 사태가 야기된 것”이라며 “질병관리청으로 독립해야 홍보와 국제협력 등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고 우수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의대 박은철(예방의학) 교수는 “보건부 독립이나 복수차관제 도입은 복지부가 나서기에 한계가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가 나서야 하는데 국회 메르스 특위가 방역 조직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 기자 sssh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