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 이란 핵 의심시설 무제한 사찰 … 내년 경제제재 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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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 협상 13년 만에 최종 타결 … 유가 하락세 미국과 프랑스 등 서방 6개국과 이란이 참여한 이란 핵 협상이 14일 최종 타결됐다. 2002년 이란의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이 폭로된 지 13년 만이다. 국제 유가는 이란 핵 협상 타결 소식에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왼쪽부터 왕이 중국 외교부장,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외무장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 알리 악바르 살레히 이란 원자력청장,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필립 해먼드 영국 외무장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빈 AP=뉴시스]

미국을 포함한 서방 6개국과 이란이 1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핵 협상을 타결하며 최종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로써 2002년 이란에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이 존재한다는 폭로로 시작된 이란 핵 위기가 13년 만에 해법을 찾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갖지 못하게 하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협상을 만들어냈다”며 “필요하다면 언제 어디서건 국제사회의 사찰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타결로 등장한 ‘이란 모델’은 이란의 원심분리기 숫자를 대폭 줄이는 등 핵 프로그램을 동결·축소해 핵무기 개발을 막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군사시설을 포함한 핵 활동 의심 시설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유엔이 이란에 대해 취했던 무기 금수 조치와 탄도미사일 제재는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다. 대신 이란에 대한 경제·금융 제재는 IAEA 사찰 결과에 따라 이르면 내년 초 해제키로 했다. 단 이란이 합의이행을 거부하면 제재가 다시 복원된다.

 이로써 미국과 국제사회는 이란이 핵보유국 지위에 오르지 못하도록 감시할 권한을 확보했고, 이란은 오일달러를 포함해 수십억 달러의 현금 유입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한때 ‘악의 축’으로 지목됐던 이란은 미국의 협상 파트너로 대접받으며 중동의 강자로 등장하는 외교적 성과도 얻었다.

 이란 모델을 가능케 한 동력은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의 현실 외교다. 과거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적과도 대화할 수 있다는 오바마 독트린은 이란 핵 협상 타결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었다. 미얀마 방문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초청,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에 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과는 집요한 핵 협상으로 성과를 냈다. 특히 이란 핵 협상엔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동참하고 있는 이란과의 암묵적인 협력 관계가 숨어 있었다. 이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는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반발과 국내 공화당의 협공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대화 노선을 고수했다. 공화당은 미국 의회의 권한인 60일간의 검토 기간 중 핵 합의를 거부할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어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다.

 이란 모델은 마지막 남은 북한 핵에 대해선 빛과 그림자를 함께 만들고 있다. 차두현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이란 핵 타결로 미국은 일단 이란이 제2의 북한이 되는 것을 차단했다”며 “북한은 핵 개발에서 더욱 외로워졌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핵실험을 하지 않은 이란을 상대로 마련된 이 모델은 핵실험을 한 북한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란 모델의 핵 프로그램 동결은 핵무기가 없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했다”며 “북한에 속았다고 느끼는 미국이 이란에서처럼 유연성을 보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란 모델이 북한에 ‘몸값 환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 차 연구위원은 “핵무기가 없는 이란에 비해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북한은 스스로의 몸값을 크게 착각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 유가는 이란 핵 협상 타결 전망만으로도 11일 이후 사흘째 하락했다. 14일(한국시간) 현재 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값은 배럴당 51달러대다. 외신들은 핵 협상 타결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정도 하락해 WTI 기준으로 배럴당 41달러 선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란은 세계 4위의 원유 매장량을 기록하고 있고 하루 원유 생산량은 330만 배럴이다. 그러나 서방의 경제제재로 인해 하루 100만 배럴도 수출하지 못해 왔다. 이번 핵 협상 타결로 이란의 원유 수출이 두 배로 늘어날 수 있어 유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강남규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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