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2012년 총선 두 달 전 해킹 프로그램 수입 정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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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구 국방부장관(왼쪽)이 13일 국회 추경안 심사를 위한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강병주 전력자원관리실장과 함께 답변 준비를 하고 있다. 한 장관은 군 기관의 도·감청 장비 구입 의혹을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국방부 예하 부대는 그러한 프로그램을 구입하거나 사용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국가정보원 도·감청 의혹’이 다시 정치 쟁점화되고 있다. 국정원이 ‘5163부대’라는 위장 명칭으로 컴퓨터는 물론 스마트폰·카카오톡까지 도·감청할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발단은 비밀문서 폭로 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였다. 세계 각국에 인터넷 감시 프로그램을 판매해 온 이탈리아 업체 ‘해킹팀’의 내부 비밀자료가 해킹으로 유출된 뒤 위키리크스에 의해 공개됐다. 새어 나간 비밀자료에는 감시 프로그램을 사들인 수십여 개 나라와 기관의 목록이 열거돼 있다. 이 목록엔 코드명 ‘SKA(South Korea Army)’와 고객명 ‘5163 Army Division’이 등장한다. 5163부대가 바로 국정원의 대외용 위장 명칭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유출된 ‘해킹팀’의 e메일 문서에 나오는 5163부대의 영문 주소(SEOCHO P.O. Box 200, Seoul)가 국정원의 대외 주소(서울 서초구 사서함 200호)와 같다는 점도 프로그램을 구입한 기관이 국정원임을 시사하는 것이란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해킹팀’ 내부문서에는 5163부대가 카카오톡에 대한 해킹 기술의 진전사항을 문의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한국군 5163부대’가 고객으로 명시된 이탈리아 해킹프로그램 업체 ‘해킹팀’ 문서. [사진 위키리크스 캡처]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 답변에서 “(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바 없다”고 답변했다. 반면 국정원은 “정보기관이 최신 동향 파악과 방어 역량 강화 차원에서 외국의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경우가 있다” 며 "영장 없이 도·감청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위키리크스에 오른 국내 통신업체 ‘나나테크’(5163부대의 장비 구입 대행)와 이탈리아 업체 ‘해킹팀’ 간의 e메일 문서에는 2012년 7월 ‘Police Department’도 나나테크의 ‘새로운 고객’으로 등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정원 외에 경찰청 등 다른 사정기관도 장비 구입을 시도한 정황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은 향후 대대적 공세를 예고했다. 문재인 대표는 13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불법적으로 대국민 사이버 사찰을 해 왔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며 “충격적이고 경악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이 주목하는 건 감시장비를 사들이고 운용한 시점이다. 5163부대가 해킹 프로그램 ‘RCS(Remote Control System)’를 39만 유로(약 5억8500만원)를 주고 사들인 시점은 2012년 2월이었다. 당시 원세훈 원장 체제의 국정원은 심리전단을 3차장 산하 독립 부서로 만드는 등 사이버 대응활동을 부쩍 강화했다. 문 대표는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선거(4월 총선 및 12월 대선) 개입에 활용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새정치연합은 국회에서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국정원을 소관 부처로 둔 국회 정보위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위키리크스에 뜬 ‘해킹팀’의 문서 내역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다. 정보위 소속 신경민 의원은 “위키리크스 문서에는 국정원의 감시장비 프로그램 구매행위 자체가 ‘불법적’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며 “사실이라면 국정원은 장비 구입이 현행 법에 저촉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사들인 셈”이라고 말했다.

글=김형구·이지상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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