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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이라크 WMD 거짓말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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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WMD)의 증거가 종전 한달이 넘도록 발견되지 않으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미 청문회 가능성을 밝혔던 의회는 독립 조사기구를 구성할 움직임이다.

언론은 부시 정부가 전쟁을 위해 관련 정보를 의도적으로 과장.왜곡했을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미국의 국제적인 신뢰도가 추락하는 것은 물론 부시의 2004년 대선가도에도 적지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판=그동안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문제와 관련, 행정부에 대해 대체적인 신뢰를 보냈던 미국 언론들은 최근 비판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특히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가 9일자 최신호에서 지난해 9월 미 국방정보국(DIA)이 이미 '이라크 내에 대량살상무기 증거가 없다'고 백악관 등에 보고했었다고 보도하면서 "부시 행정부가 고의로 정보의 누락.무시.짜깁기로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부풀렸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뉴욕 타임스는 7일 지난달 28일 중앙정보국(CIA)이 대량살상무기 증거라며 공식 발표했던 '세균무기 제조용 트레일러'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조목 조목 이유를 짚었다.

신문은 ▶무기 제조용으로 쓰기에는 배양탱크 용량과 배출용 파이프 굵기가 너무 작고▶증기 살균장치가 없었으며 ▶제조 과정의 전염방지용 세척.통제 설비가 없었다는 점에서 "증거확보 압력에 쫓긴 조사반원들이 성급히 세균 제조용이라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이날 지난해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부시 대통령,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의 발언들을 언급하면서 "행정부의 확신은 전문가들의 객관적 판단을 벗어난 것이며, 고의적이지 않았더라도 이는 정보의 분석.보고.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변명에 땀 흘리는 정부='세균 제조용 트레일러'발표 직후인 지난달 30일 부시 대통령은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 '대량살상무기 증거를 마침내 찾았다'고 단정했다.

이후 트레일러가 증거로서 부족하다는 지적이 일자 6일 포르투갈의 마누엘 두랑 바로수 총리에게는 "증거를 반드시 찾아낼 것"이라고 표현을 바꿨다.

DIA의 로엘 재커비 국장은 자신의 보고서로 파장이 일자 "보고서에 증거가 없다는 대목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것이 결론이며, 따라서 정보의 과장.왜곡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끝까지 못찾는다면=증거 확보에 최종 실패할 때 부시 행정부의 선택은 두 가지다. 대량살상무기가 없어도 사담 후세인이 국민을 탄압하고 중동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였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내세워 밀고 나가는 것이다.

또 다른 대안은 "믿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정황 증거"를 밝히면서 문제를 정보의 처리.보고 부분으로 국한시키면서 정보체계를 적당히 재편하는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은 불가피하며 '대량살상무기→테러범에게 확산→미국에 위협→자위권 차원에서 관련국에 선제공격'으로 이어지는 부시 독트린도 흔들릴 수 있다. 전쟁을 주도한 신보수주의파의 입지 약화도 예상된다.

정치적 부담도 엄청나다. 이미 2004년 대선주자인 민주당의 데니스 쿠시니치 하원의원과 봅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6일부터 "전쟁 명분을 위해 정보기관들이 꼭두각시 역할을 했다면 부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며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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