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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EU엔 남더라도 유로존 이탈 가능성…EU는 지원 용의

중앙일보

입력

세계의 이목이 유럽연합(EU)의 수도 브뤼셀로 쏠리고 있다. 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 협상 재개 여부를 논의할 EU 28개국 정상회의가 12일 브뤼셀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최후통첩을 받은 그리스에는 운명의 날인 셈이다.

브뤼셀자유대(VUB) 부설 EU-코리아 정책연구소 김미령(59) 소장에게 유로존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 그리스 사태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청으로 방한한 김 소장은 대구 출신으로 숙명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남미(브라질·멕시코) 외환위기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벨기에·아일랜드의 금융 분야에서도 일했다. 벨기에 국적을 지니고 있다.

-EU 28개국 정상회담의 의미는.

"그리스 문제에 대해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을 넘어 EU 전체가 참여해 더 큰 범위에서 공동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EU는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 베네룩스(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그) 3국이 막후 교섭 능력을 발휘해 항상 타협을 통해 만장일치로 풀었다. 이번에도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가 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스에 12일은 운명의 날이 될 텐데.

"EU 내부에선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나가는 그렉시트(Grexit)를 가정해 식량과 의약품 등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까지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그리스에 긴급자금을 줄 수 있는 곳은 유럽중앙은행(ECB)뿐이다."

-누가 칼자루를 쥐고 있나.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그리스를 돕겠다고 했다. 결국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독일 은행들이 최대 채권자이기 때문이다. 메르켈이 양보하면 국내 정치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희랍인의 목줄을 게르만인이 쥐고 있는 셈인데.

"독일인은 부지런하고 근검절약하는데 그리스인은 수입보다 지출이 많다. 탈세도 심하고 수십년 간 선심성 복지 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재정 관리가 제대로 안됐다. 저부담·고복지는 비정상적이다."

-사고는 그리스인들이 치고 다른 EU 회원국이 불끄기 하는 형국이다.

"1999년 출범한 유로존에 그리스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2001년 가입했다. 그 때 그리스의 가입을 정치적 이유로 허용한 EU는 문제가 터졌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그리스도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

-그리스는 한 때 자신들을 침략했던 독일에 당당하게 손을 벌리고 있다.

"2차 대전 때 독일이 그리스에 입힌 피해를 1500억유로(약 187조원)로 환산해 독일에 요구한 그리스인도 있다. 물론 독일은 이미 모든 유럽 국가에 전쟁 피해를 보상했다며 중복 보상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그리스 사태가 국제정치에 끼칠 파장은.

"그리스는 터키와 인접한 유럽의 완충지대다. 유럽 지도자들은 그리스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 지정학적 불안 요인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리스가 이탈하면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와 갈등해 온 미국에도 부담이다."

-미국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오바마 대통령이 메르켈 독일 총리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에게 전화해 그리스의 부채 경감을 주문했다. 이런 상황에서 EU가 미국의 말을 모두 받아들이면 압력에 굴복한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

-12일 이후를 어떻게 전망하나.

"정치적 타협이 있을 것이다. EU가 그리스를 도와주되, 그리스가 EU에는 남더라도 유로존에서 나갈 가능성이 있다. 다만 EU 정치인들은 자신이 그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정치적 책임을 지려 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스 재정위기가 중국의 최대 수출 시장인 EU 경제에 타격을 주고, 중국경제가 침체되면 한국에도 큰 충격 요인인데.

"한국 경제의 중국 시장 의존도가 너무 높다. 인도나 아프리카 등 다른 지역으로 분산하고, 북한과의 남북 경협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민감해 하는 인권 문제를 제기해도 북한이 EU와는 2007년 이후 계속 대화를 해왔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와 달리 EU는 북한에 전략적 이해가 없고 북한 체제에 위협이 안 되기 때문이다. EU는 전쟁-평화-안정-통합의 경험이 있다. 북한 발전에 EU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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