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으로 롤스로이스, 벤틀리 … “한 해 세금 2조4651억 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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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고가의 업무용 차량에 대한 제한없는 세제혜택으로 연간 최소 2조4651억원의 세금이 새어나가고 있다는 주장이 시민단체로부터 제기됐다. 현행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은 업무용 차량에 대해 차 값 뿐 아니라 취득세와 자동차세, 보험료, 유류비 등 유지비까지 전액 무제한으로 경비처리를 해주고 있는데 이를 악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어서다.

 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개인사업자와 법인에 판매된 차량은 총 10만5720대. 금액으로는 7조4701억원에 달한다. 경실련은 이를 토대로 차량 구입시점으로부터 5년 간 총 2조4651억원의 세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개인사업자와 법인이 업무용으로 고가의 차를 산뒤 이를 사적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고급 브랜드일 수록 총 판매 금액에서 개인사업자나 법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게 자동차 업계 상식이다.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총 판매금액 중 사업자의 비중이 97.9%에 달한다. 벤틀리는 84.8%, 포르쉐는 76.5%가 사업자였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전체 판매 금액의 63.6%가 법인이나 사업자가 차지했다.

 국산 최고급 차량도 사정은 마찬가지. 현대차의 에쿠스는 지난해 전체 판매대수 중 사업자 비중이 77.2%에 달한다. 제네시스와 기아차의 K9은 각각 47.4%, 62.8%가 사업자에게 팔렸다.

 경실련 측은 “지난해 개인사업자와 법인이 가장 많이 구입한 BMW의 520d(판매가 6390만원)를 개인사업자가 구매하면 5년간 4500만원의 각종 세금을, 법인사업자가 구매했을 땐 2600만원의 세금을 각각 감면 받을 수 있다”며 “개인사업자가 받는 세제혜택은 이 차 판매가의 70.4%에 달해 정부가 차 값의 7할이나 대신 내주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에 대해 경실련은 대당 구입가 3000만원 선을 기준으로 이를 초과한 금액에 대해서는 경비처리를 제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 캐나다는 차량 구입가 중 3만 캐나다달러(2678만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경비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동시에 운행일지 작성을 강제토록해 업무용 차라도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한 부분에 대해서는 100% 세금을 매긴다.

 싱가포르는 업무용 차량은 아예 구입비와 유지비 모두 경비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경실련 측은 “캐나다 기준만 적용해도 법 시행 5년째가 되는 해부터 매년 1조5288억원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탈세를 부추기는 현행 소득세 및 법인세법 개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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