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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신경숙 표절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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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 <2015년 6월 24일 30면>

신경숙 표절 사태 … 문학 출판계, 이대로는 안 된다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신경숙 소설가가 23일 마침내 입을 열고 표절을 간접 인정했다. 그러나 개운치 않은 대응으로 파장이 완전히 잦아들지는 미지수다. 신씨는 이날 한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라는 문제 제기가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조해본 순간 나도 그걸 믿을 수 없었다. 발등을 찍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토를 달았다. 표절이 아니라 ‘표절이라는 문제 제기’가 맞고, 혹 표절이어도 의도적 표절은 아니라는 애매한 답이다. 대작가다운 보다 적극적이고 솔직한 대응이 아쉽게 느껴진다.

 이번 신씨 표절 사태는 단지 작가 개인의 윤리, 작가의식 차원을 넘어 한국 문학 출판계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냈다. ‘전설’ 외에도 신씨가 연루된 표절 의혹 사례가 많았고 ‘전설’의 경우만 해도 이미 15년 전에 문제가 제기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의혹을 받고도 제대로 된 논쟁 한번 없이 국내 대표 작가로서 건재해왔다는 사실이 당혹감마저 안겼다.

 이날 한국작가회의 긴급토론회에 참가한 이명원 경희대 교수는 “의식적이고 명백한 표절”이라는 평가와 함께 “2000년대 문학의 실패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은 패거리화와 권력화, 이에 따른 비평적 심의 기준의 붕괴와 독자 상실에 있다”고 지적했다. 대형 출판사와 돈벌이 되는 소수 작가 중심의 권력화, 그리고 출판자본에 예속된 비평가들의 ‘주례사 비평’. 이들이 건전한 자기 비판과 논쟁을 몰아내 ‘표절 사태’에 이르게 한 주범이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가 가뜩이나 위축된 한국 문학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외면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토론회에서 오창은 중앙대 교수는 “비평가들의 진지한 성찰과 함께, 이번 사건이 한국 문학의 존재조건을 바꿔놓은 문학사적 사건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학 출판계의 자성과 환골탈태만이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표절 사태를 슬기롭게 마무리하는 길이 될 것이다.

한겨레 <2015년 6월 24일 31면>

한국문학계의 성찰 계기 돼야 할 ‘신경숙 표절’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작가 신경숙의 표절 문제가 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신경숙과 출판사 창비는 애초의 완고한 태도를 바꿔 표절 가능성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23일에는 작가단체와 문화운동 단체가 중심이 되어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라는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작가의 창작윤리와 이른바 문학권력의 전횡을 포함해 오늘의 사태를 초래한 문제점들을 문학계는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신경숙은 23일치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거론된 일본 소설과 자신의 작품 문장을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인정했다. “문학상 심사위원을 비롯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도 했다. 표절 경위를 기억하지 못하겠다고는 했으나 표절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철저한 반성을 통해 더욱 훌륭한 작가로 거듭나길 바란다.

 문학시장을 좌지우지해온 몇몇 대형 출판사의 행태도 문제로 떠올랐다. 23일 토론회 발표 내용을 보면, 신경숙은 창비와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라는 세 출판사를 번갈아가며 소설을 간행해왔다. 이들 문학출판사는 예전에 참여문학이든 순수문학이든 나름의 색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여 권위를 쌓아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작품이 팔리느냐라는 상업적인 기준만을 경쟁적으로 추구했고 최소한의 작품 검증 기회마저 도외시했다고 한다. 문학의 사회적 책임이 실종된 배경에 출판자본의 무한상업주의가 도사리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 보니 한국문학이 노벨 문학상을 배출해야 한다거나, 아무개가 한국문학의 대표상품이라는 등의 언술도 당연시할 게 아니었다. 문학의 사명을 제쳐놓고 자본의 논리를 은근히 정당화하는 포장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비평의 나태도 문학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가 뒷전이 되는 데 한몫했다. 문학의 권력화와 상업화를 견제해야 할 비평가들이 문학권력에 포섭되어 동업자 노릇을 해왔다는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신경숙 표절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문학계의 문제는 문학 밖의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가치가 실종된 가운데 자본 중심으로 욕망만을 추구하는 시대의 문제점이 문학에 그대로 투영됐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창비와 같은, 사회 담론 생산의 근거지로 자부해온 대표적 출판사들이 나쁜 순환고리의 한 축에 있었음은 충격이다. 문학계의 총체적 반성과 재탄생을 촉구한다.

논리 vs 논리

“문학계 총체적 반성 필요” … “한국 문학 불신 키울까 걱정”

소설가 신경숙 작품의 표절 논란에 대한 토론회가 지난 달 2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렸다. 문화연대-한국작가회의 주관으로 열린 이날 토론회엔 조영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총장, 정원옥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 스칼리지 교수, 이동연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교수, 심보선 시인, 정은경 원광대 문창과 교수 등이 참석했다(왼쪽부터). [신인섭 기자]

신경숙은 수많은 문학상을 받은 대한민국의 대표 소설가 중 한 사람이다. 『엄마를 부탁해』 같은 그녀의 작품은 밀리언셀러일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이런 그녀가 문단 데뷔 30년 만에 작가로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1994년 발표한 『전설』이라는 작품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신 작가는 이에 대해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말로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신경숙 표절’ 논란은 일파만파로 번져가는 모양새다.

 이에 대한 한겨레와 중앙의 사설은 ‘작가 신경숙’보다 문단의 구조적 문제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신 작가의 표절 인정에 대해 중앙은 “대작가다운 보다 적극적이고 솔직한 대응이 아쉽게 느껴진다”고 평가한다. ‘대(大)작가’라는 표현에는 신경숙에 대한 기대가 묻어난다. 한겨레는 “철저한 반성을 통해 더욱 훌륭한 작가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당부하기까지 한다.

 사실 신경숙은 훌륭한 작품을 필사하며 좋은 글에 대한 감각을 익힌 소설가다. 이렇게 작법을 익힌 사람들은 외웠던 작품을 자기 생각으로 착각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신 작가가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며 애매하게 말한 이유가 짐작 가는 대목이다. 이 경우에 표절 논란은 법적 책임보다 작가의 양심에 관한 문제가 되어 버린다.

 때문에 중앙과 한겨레는 표절에 대한 지적이 이미 15년 전에 있었음에도, 여기에 대한 검증을 벌인 적이 없는 문단의 구조적 문제에 집중한다. 한겨레는 “출판자본의 무한상업주의”를 사태의 원인으로 꼽는다. 중앙 역시 “대형 출판사와 돈벌이 되는 소수 작가 중심의 권력화, 그리고 출판 자본에 예속된 비평가들의 ‘주례사 비평’”을 “건전한 자기비판과 논쟁을 몰아내 ‘표절 사태’에 이르게 된 주범”이라고 진단한다. 문제의 원인을 출판 상업화와 문학권력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두 사설의 생각이 일치하는 셈이다.

 대형 출판사들은 주요 문학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문학지의 기획위원, 편집위원을 맡은 문인들은 문단의 ‘주류’를 이룬다. 출판사들은 자신들의 문학잡지를 통해 작가들을 등단시키며, 이들의 작품에 대한 평론 또한 대형 출판사들의 문학지에 실린다. 또한 주요 문학상을 운용하는 곳도 이들 출판사다. 돈을 중심으로 대형 출판사와 비평가, 작가가 카르텔을 이룬 모양새다.

 이런 구도에서 작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검증이 나올 리 없다. 잘 팔리는 작가라면 더더욱 흠집을 들춰낼 까닭이 없다. ‘신경숙 표절’은 이런 배경 아래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해법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문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한겨레와 중앙의 입장이 분명하게 갈린다. 한겨레는 ‘문학의 사명’을 앞세우며 “신경숙 표절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문학계의 문제는 문학 밖의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가치가 사라졌기에 문학도 타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문학은 독자가 보고 싶어 하는 것보다 보아야 할 것을 보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자본 중심으로 욕망을 추구하는 시대”에는 이런 소설이 살아남기 어렵다. 출판사들은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일깨우는 작품보다 ‘상업적 기준’을 채워주는 작가에 매달리고 있다. 한겨레가 “문학계의 총체적 반성과 재탄생을 촉구”하는 까닭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반면 중앙은 “가뜩이나 위축된 한국 문학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외면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한다. 문제가 있어도 이익만 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건전한 시장을 무너뜨린다. 시장을 살리려면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규칙을 엄정하게 지키고 윤리를 올곧게 세워야 한다. 이 점은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덕이 사라진 곳에는 독자도 관심도 사라진다. 중앙일보는 공정한 경쟁으로 훌륭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 건강한 시장의 회복을 표절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하는 듯싶다.

 그럼에도 문학이 본래의 의미와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두 사설의 생각은 완전히 같다. 이 점에서 “진지한 성찰과 함께 이번 사건이 한국 문학의 존재조건을 바꿔놓는 문학사적 사건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오창은 중앙대 교수의 말은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