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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남기고 … 사고 수습 중국행 최두영 원장 추락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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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국 지린성 지안의 한 장례식장 관계자들이 5일 오후 중국 연수 중 버스 추락사고로 숨진 한국 공무원들의 시신을 운구차로 옮기고 있다. 희생자들의 시신은 선양을 거쳐 유족들과 함께 오늘(6일) 인천공항을 통해 돌아올 예정이다. 장례는 사망 공무원이 속한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치러진다. [지안 신화=뉴시스]
최두영

지난 1일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서 발생한 공무원 연수생들의 버스 추락사고 현장 수습팀을 이끌던 최두영(55) 지방행정연수원장이 5일 갑자기 숨졌다. 지안시 장리청(張立稱) 공안(경찰)국장은 5일 오후 “현장 폐쇄회로TV(CCTV) 화면과 목격자들의 진술을 종합할 때 최 원장이 건물에서 추락할 당시인 5일 오전 3시3분(현지시간) 객실에 다른 사람이 없었다. 현장감식 결과 객실 창문에서 최 원장의 지문이 채취됐다”며 투신 자살로 결론지었다. 장 국장은 이어 “시신 부검에서도 타살 혐의가 나타나지 않아 타살 가능성을 배제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살 동기는 여전히 의문이다.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 주재 한국 총영사관과 현지에 파견된 행정자치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사건 개요는 이렇다. 5일 오전 3시13분쯤 지안시 홍콩시티호텔 당직 보안요원이 밖에서 ‘퍽’ 하는 소리를 듣고 놀라 나와 보니 호텔 현관 바로 옆에 한 남자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최 원장이었다. 위를 보니 4층 객실 창문이 열려 있었다. 그는 곧바로 긴급 구호 번호인 ‘120’을 눌렀다. 동시에 지안 공안 당국에 관련 내용을 신고했다. 출동한 공안은 쓰러진 남자를 구급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갔지만 최 원장은 이날 오전 3시36분 의사로부터 사망 진단을 받았다. 출동한 지안시 공안이 최 원장이 투숙했던 4층 객실을 조사했다. 객실은 깨끗이 정리돼 있었고 내부 탁자 위에 볼펜 자국이 남은 메모지가 발견됐다. 메모지 한 귀퉁이에 큰 물음표(?)가 그려져 있었지만 유서는 없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을 물음표로 대신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 원장은 행정자치부 사무관과 같이 방에 투숙했는데 사건 당시 이 사무관은 밖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에서는 사건 처리와 관련한 심리적 압박을 그(자살) 원인으로 거론하고 있다. 버스 추락 하루 뒤인 2일 정재근 행자부 차관과 함께 현장 수습팀으로 지안에 도착한 그가 사망자 장례 절차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한국) 유가족과 중국 당국 간의 의견 차이로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이다. 중국 공안 당국은 시신의 화장을 요구했고 유족들은 한국으로의 운구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선양 주재 한국 총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당초 중국 당국이 화장을 강하게 고집해 (최 원장이) 유가족과 사이에서 다소 피로한 기색을 보였다”고 말했다. 행자부 관계자도 “최 원장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난 데 대해 안타까워하고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최 원장 사망 전날 중국 당국이 유가족들의 의견을 참고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에 따라 그가 유가족들과 국내 운구 절차를 논의했기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할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번 사건이 최 원장과 전혀 관계가 없어 도덕적 책임감에 시달릴 이유가 없었다는 점도 그의 자살 가능성에 대한 의문으로 남는다. 개인적인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행자부 관계자는 “사고 수습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시점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울증 등 기저질환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최 원장은 행정자치부 정책기획관, 강원도 행정부지사, 안전행정부 기획조정실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쳐 올 1월 지방행정연수원장에 임명됐다.

 한편 이번 사고로 숨진 공무원 시신 10구와 유가족들이 6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할 예정이다. 장례는 사망 공무원이 속한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치러진다. 지안시 공안 당국은 4일 이번 사고의 원인과 관련, “사고 버스의 블랙박스를 조사한 결과 사고 당시 주행속도는 시속 66~88㎞로 해당 도로의 제한속도를 초과했다”며 “이번 사고가 과속 및 운전 부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서울=박현영 기자 chkc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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