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 카페]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표명렬 지음, 동아시아, 9천원

오래 전 군대 생활을 한 이들은 "요즘 군대 참 좋아졌다"며 부러워한다. 내무반 시설이 현대적이고 위생적으로 개조되고 자유롭게 전화도 쓸 수 있고 구타가 사라지는 등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 TV 등을 통해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부러워하는 듯한 말투 속에는 어느 정도의 탄식이 묻어있게 마련이다. "저렇게 (자유롭게) 풀어져서야 어디 군기가 서겠나"라고. 하지만 이 책의 저자(65)는 그런 맹목적인 관점에 반대한다.

"최근 어떤 부대에서 의식개혁에 관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질문을 던질 때마다 '예! 상병, 아무개'라며 목이 터져라 큰 소리로 관등 성명을 대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제지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런 경직된 모습이 군기가 서있고 군인답다고 생각하는지 걱정스러웠다.제발 로봇처럼 서서 큰 소리 지르는 것 좀 그만하게 하자."

군인의 권리와 자율성이 보장되고 책임의식이 자랄 수 있는 역동적인 내무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외형상의 어떤 변화도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의 뼈 속 깊이 각인된 나머지 티끌 만큼의 문제의식조차 갖지 못하게 된 군의 개혁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는 에세이다. 사회 각분야에서 변신의 몸부림이 이는 와중에도 오직 군대만은 '성역'처럼 남아있다.

저자는 우리 군을 지배하는 절대 복종.군기 만능.인격 무시.생명 경시.간부 특권 주의 등 권위적 문화를 혁파하는, '군대 파괴'를 주창한다. 군의 환부를 이처럼 드러내놓고 제기한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군사평론가 지만원씨가 한국 군대의 비효율성과 무기체계 등을 질타하면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자고 주장한 적은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池씨와는 다른 입장에 서 있다.

즉 우리 군이 가진 문제의 본질은 기능과 효율성에 있는 게 아니라 정신과 문화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파격적인 주장이 퇴역 장군에게서 나왔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1958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월남전에도 참전한 정통 장교 출신이다. 그러나 육사 교육 과정과 전쟁의 경험을 통해 국군의 혼을 살리고 일본 군대식의 부정적 군대문화를 정화하는 게 긴급하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래서 67년 월남에서 귀국하자 마자 엘리트 장교로 승승장구할 수 있는 전투 병과를 포기하고 정훈 병과를 택했다.

이후 72년엔 최초로 대만 정치심리전 학교에 유학하고 77년 국군 정신전력학교를 창설하기도 하는 등 87년 장군(육군본부 정훈감)으로 전역할 때까지 군의 정신전력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지금은 한국정신교육연구원 원장으로 일하며 강연 등을 통해 군 개혁의 필요성을 전파하고 있다.

그에게 군대 개혁은 단순히 몇몇 제도를 바꾸고 병영생활을 민주화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군의 역사를 다시 써야한다는 것. 한국군의 효시는 항일 투쟁을 벌였던 상해 임시정부의 광복군이다.

그런데도 육사를 비롯한 군사교육 기관에서는 한국군의 전신이 '남조선국방경비대'라고 가르친다. 식민지 시절 일본군 밑에서 독립군을 상대로 싸웠던 친일 세력이 주도한 남조선국방경비대가 군대를 접수했을 때, 이미 한국 군은 파행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그는 또 5.18 광주민주화 운동 뿐 아니라 제주 4.3사건, 여순 반란사건, 5.16 쿠데타 등 현대사에서 군대가 자행했던 불명예스러운 행위를 규명하고 반성해야 실추된 군의 명예를 회복하고 미래지향적인 군대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군대문화가 개혁되지 않고는 민주적 정치문화가 뿌리내릴 수 없다"는 저자의 외침에 이제 우리 모두가 답해야 한다.

이영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