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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TPP 가입 서두를 수만은 없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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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진통 끝에 미국 의회에서 무역촉진권한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부여했다. 2007년 6월 30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서명과 함께 종료된 무역협상권한을 8년 만에 의회로부터 부여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4월 말 일본 아베 총리와의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발판으로 7월 중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타결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산업분업체계를 캐나다·멕시코로 확대한 미국이 이제 일본뿐만 아니라 베트남·칠레·호주 등을 포함한 12개국을 아울러 생산과 교역구조를 확대하게 된다.

 특히 TPP는 전면적인 시장 개방과 더불어 누적 원산지, 국영기업, 지적재산권, 투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미 FTA를 앞서는 시장통합규범을 제시하고 있다. 역외 국가들에 대한 차별성을 한층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즉 TPP 비가입국에 대한 불이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다른 FTA들과는 달리 향후 역외국들이 TPP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오바마 대통령이 무역촉진권한 확보를 위한 의회 설득과정에서 중국 견제를 위한 경제외교 수단으로서의 TPP 성격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앞으로 미·중 통상대립구도가 더욱 격화될 것이란 의미다. 중국도 미국과 일본을 배제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서둘러 출범시키면서 맞불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정부는 TPP의 토대가 되고 있는 한·미 FTA를 체결했고 일본·멕시코를 제외한 10개국과 이미 FTA를 타결했지만 무턱대고 가입을 서두를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TPP 가입으로 초래되는 사실상 일방적인 대일 수입자유화는 한·중 FTA와는 다르게 우리 산업계로부터 큰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일본이 TPP 협상에서 쌀 수입을 확대하는 경우 20년의 유예 끝에 2014년 말 겨우 쌀 관세화를 도입한 우리 정부로서는 추가로 쌀 수입을 확대하기 곤란한 처지다. TPP 가입을 정치적으로 풀기 매우 어렵게 되는 것이다.

 TPP 타결로 주목할 부분은 12개 회원국들 간에 누적원산지제도가 적용됨에 따라 수직적 생산분업구조가 심화되는 점이다. 이는 역외국가들의 생산기반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베트남·말레이시아가 포함되면서 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가 가입을 서두르고 있으며, 칠레·페루와 산업경쟁관계에 있는 코스타리카·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들도 가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회원국이 확대되면 산업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들도 가입할 수밖에 없어 현재 추진되는 12개국 간의 TPP는 타결 후 급속히 확대될 전망이다. 또 TPP로 사실상 미·일 FTA가 성립되면 현재 진행되는 일본과 유럽연합(EU)의 FTA가 타결될 공산이 커진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과 EU 간의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도 한층 동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EU가 함께 참여하는 서비스자유화 협상까지 감안하면 TPP는 실로 선진국 주도의 경제블록화를 촉발하는 기폭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우리의 TPP 대응전략은 단순히 현 시점의 12개국 TPP에 국한돼선 안 된다. TPP로 촉발되는 향후 세계통상체제의 동태적 변화상황을 기반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현시점에서 TPP 대응전략의 초점은 비단 가입 시점을 결정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TO)와 별도로 구축되는 포스트 TPP 체제에 대한 국내 산업 환경의 수용성을 키우는 대책 수립에 있다.

 우리의 TPP 가입 시점 결정은 TPP 협상 결과에 따라 전략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추진해도 공식 TPP 회원국으로 인정받기까지는 4∼5년의 기간이 걸릴 수 있어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 더욱 중요한 과제는 시간 문제로 다가온 TPP 차원의 새로운 무역규범을 국내 산업계가 신속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도와 산업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TPP의 국영기업 관련 규범은 시장경쟁에 보다 친화적인 운영방식을 요구하는 바, 현재 우리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구조조정 작업에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또 대일 시장개방에 대비한 중장기 산업경쟁력 제고 방안과 산업전략 개편도 시급하다. TPP 가입협상과 함께 추진될 한·중·일 FTA 및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을 포함하는 16개국이 진행하는 지역포괄적경제협력협정 등 거대 FTA 협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산업·통상·자원의 3차관 체제로 재정비해 통상기능을 보완해야 한다.

 미 무역대표부는 8년 만에 부여받은 무역촉진권한을 십분 활용해 연내에 TPP를 발효하고 조만간 EU와 FTA도 타결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무역촉진권한 부여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미 의회의 복잡한 정치구도를 감안하면 실제로 TPP 협정을 발효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통상체제에서 전례 없는 지각 변동을 앞둔 지금 우리 산업계와 정부는 전방위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해 얼마 남지 않은 산업통상의 ‘골든타임’을 허비하지 않아야 한다.

안 덕 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