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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보는 남자]정성으로 겨루는 팔도 요리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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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TV 보는 남자]정성으로 겨루는 팔도 요리 대결

[사진 O’live `한식대첩` 캡처]

‘먹방’에 이어 ‘쿡방’까지, 지금 TV에서는 음식 냄새가 진동한다. 불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가장 간편한 호사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기 때문일까. 팔도를 떠돌던 개그맨과 망가지는 아이돌이 그득하던 TV 예능 프로그램이 앞다퉈 요리사들을 새 주인으로 맞고 있다. 스타 요리사까지 생겼다. ‘백주부’ 백종원, ‘허세 셰프’ 최현석, ‘요리 요정’ 정창욱까지. 저마다 다른 개성을 뽐내는 요리사만큼이나 TV가 차린 밥상은 그 국적과 만듦새가 올림픽 뺨치게 다양하다. 냉장고에 잠자는 재료로 만든 기막힌 퓨전 요리(냉장고를 부탁해)부터 당장 요리법을 따라하고 싶은 간편한 가정식(집밥 백선생), 최근 유행을 적극 반영한 건강식(테이스티 로드)까지 있다. 이 가운데 오직 정통 한식으로 승부를 겨루는 요리 프로그램 ‘한식대첩’(2013~, O’live)이 5월 21일 세 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한식대첩’은 서울·경기·충청·전라·경상·제주·이북 등 전국 곳곳의 한식 고수가 각 지역의 전통 음식의 맛을 겨루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요리 프로그램이 지금 같은 활황을 맞기 전인 2013년 9월, 첫 시즌을 방영했다. ‘한식대첩’은 연예인과 예능감 있는 요리사들의 입담 등에 기대는 다른 요리 프로그램과 조금 다른 것을 추구한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각 지방의 요리 고수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인이다. 조리기능장 자격증이 있는 두 친구, 종갓집의 시어머니와 며느리, 음식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딸, 요리 스승과 제자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두 명이 한 팀을 이루는 식이다.

두 사람이 함께 요리를 완성해야 하기에 둘의 관계는 성공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다. 눈빛 하나로 완벽하게 소통하는 베테랑 투수와 포수처럼, 두 요리사가 요리하는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호흡이 척척 맞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들이 지금의 호흡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요리를 하며 서로를 믿게 됐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물론 실수가 없을 순 없다. 그럴 때는 각 지역의 사투리가 도마 위에 울려 퍼지는 칼질 소리만큼이나 경쾌하게 튀어 오른다. 누군가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순간을 목격하는 건, 잘생기고 예쁘고 말 잘하고 남을 웃길 줄 아는 연예인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일이다. 아니 그보다 더 상쾌한 경험일지 모른다.

‘한식대첩’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는 각 지역에서 산지 직송한 비범한 식재료를 구경하는 데 있다. 싱싱하게 펄떡이는 활어, 머리털 나고 처음 구경하는 소의 새끼보(자궁) 등이 매회 조리대 위에 올라온다. 그 진귀한 재료를 하나의 요리로 탄생시키는 건 ‘정성’이라는 힘이다. 다른 요리 프로그램이 손쉬운 인스턴트 재료를 재치 넘치는 퓨전 요리로 탈바꿈시킬 때, ‘한식대첩’은 귀한 재료를 정성스레 손질하고 요리해 전통 음식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한식대첩’은 갓 지은 밥의 따스함을 느껴본 모든 이들을 위한 고전적 요리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6월 4일 방송된 3회 ‘만두대전’에서 메추리 고기를 넣은 만두 ‘혼돈찜’을 만든 북한 출연자 허진은 엄마를 생각하며 요리했다고 말했다. 그가 만든 혼돈찜을 보며 가족의 저녁 밥상을 위해 만두를 빚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 시청자가 어디 나뿐이었을까.

글=진명현 노트북으로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 등 장르 불문하고 동영상을 다운받아 보는 남자. 영화사 ‘무브먼트’ 대표. 애잔함이라는 정서에 취하면 헤어나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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