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옥죄고 물가 올라 서민경제 부담” 전경련 등 30개 경제단체 공동성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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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안 확정에 대해 재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즉각 ‘공동 입장문’을 내고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이런 움직임에 동참한 곳은 전국경제인연합회·중소기업중앙회 등 5개 경제단체와 반도체산업협회·석유화학협회 등 25개 업종단체, 발전·에너지 업종 38개사를 망라했다.

 이들은 “정부 확정안은 경제 발목을 잡는 또 하나의 ‘암 덩어리’ 규제”라고 반발했다. 나아가 “국민 일자리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인데도 국제 여론만을 의식해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특히 재계는 온실가스 총감축률(37%)이 최근 ‘공론화 과정’에서 나온 ‘4개 시나리오’(약 14·19·25·31%)보다 강화됐다는 사실을 우려하고 있다. 철강·석유화학·수송 등 한국의 기간산업은 ‘화석연료’를 많이 쓴다. 에너지 산업의 화석연료 비중은 85%에 달할 정도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세계 7위의 가스 배출국(연간 6억t)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대 평가’를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의 배출 비중은 세계적으로 1.8%에 그친다. 중국(28%)·미국(15%)·일본(3%) 등 강국에 한참 못 미친다. 재계는 이날 정부 확정안이 결국 ‘탄소배출권 제도’ 등을 강화해 기업을 옥죌 것으로 우려한다. 공장에서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가 적어져 가동이 위축되고 산업계 고사(枯死)를 부른다는 걱정이다.

 실제로 올 들어 시행된 탄소배출권의 경우 1차 계획기간(2015~2017년)에 산업계는 각 업종의 공장 가동 상황을 감안해 최소 20억t의 배출량 허용을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16억4000만t을 할당했다. 이를 넘겨 배출하면 과징금을 물고, 산업계 전체로 최대 12조원 부담이 예상된다.

 해법의 하나는 탄소 배출을 줄일 ‘친환경 기술 개발’이다. 정부도 이날 산업계 피해 최소화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서 일자리도 창출하는 ‘에너지 신(新)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 친환경차, 이산화탄소 포집 등 ‘녹색기술’은 선진국과 격차가 5년가량 벌어졌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신재생 에너지의 경우 비용 확대로 전기료·물가 인상을 유발해 결국 기업과 서민경제 부담으로도 이어진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도 정부 감축안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성명을 통해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전부 국민에게 떠넘기겠다는 계획으로 ‘오염자 부담 원칙’을 어겼다”고 비판했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해외에서 탄소배출권을 사오더라도 어디에서 사오고 어떤 재원을 투입할 것인지가 문제”라며 “신(新)기후체제 아래선 개도국도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배출권 구입도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윤순진 교수는 “상업·가정 등에서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전력요금 인상이 불가피한데 최근 전력요금 인하는 정책의 일관성을 잃은 것”이라며 “배출 전망치를 높게 잡아놓고 이를 줄인다는 이유로 원전을 확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제사회 눈치를 보는 사이 국내 설득엔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지식기반기술 에너지대학원 교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놓고 국제사회의 약속이라며 너무 경직적인 자세를 고수해 정책 추진 과정에서 혼선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김주태 전경련 산업정책팀장은 “온실가스 감축의 자세한 파급력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정부가 감축 배경에 대해 국민에게 더 자세히 설득을 구해야 하고 향후 5년 정도의 정책 가이드 라인을 공개하는 등 예측 가능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술·김영민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js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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