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집에는 소가 없었다. 소 먹이러 가는 아이들이 부럽기만 했다. “소 한 마리만 있었으면….”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식구가 연명할 정도인 그의 집으로선 너무나 큰 재산이기 때문이다.
50여 년 뒤 베트남의 농촌 마을에서 소년의 꿈이 영글고 있다. 농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소를 사줬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카우빌리지(Cow Village) 조성사업’을 펴고 있는 허노열(65·사진) 카우빌리지 달서후원회장. 그는 대구 성서공단에서 PVC파이프 제조업체인 ㈜용전을 운영하고 있다.
허 회장은 지난달 4일 달서구청의 우호도시인 베트남 중부 탐키시의 탐탕마을 34가구에 암소 구입비와 예방접종비 등 2500만원을 전달했다. 이 돈은 허 회장과 회원 5명이 모았다. 한 마리에 65만원 안팎인 소 구입비의 90%를 후원회가 대고 농민들이 10%를 부담한다. 이 소로 농사를 지으며 부농의 꿈을 키우게 된다. 새끼를 낳으면 농민이 소유한다.
후원회 측은 암소 한 마리가 3년간 송아지 두 마리는 낳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 구입자금은 3년 뒤 갚아야 한다. 이를 위해 탐탕마을 농민회 대표와 탐키시 관계자, 수의사 등으로 카우빌리지 관리위원회를 만들었다. 소가 전염병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죽으면 자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 반환된 자금은 같은 식으로 다른 농가에 지원된다.
허 회장이 이 마을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1년 7월이다. 달서구가 탐키시와 교류 협약할 때 동행하면서다. 당시 그는 달서구새마을회를 이끌었다. 탐키시의 농촌은 옛날 우리와 비슷했다. 시멘트 바닥에 돗자리만 깔고 사는 빈곤층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이들을 위해 뭔가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소를 키우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다. 허 회장은 “우리도 과거에 소를 키워 자녀를 교육시키고 살림을 일으키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는 달서구 지역 인사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후원회를 구성했다. 탐탕마을 젊은이 세 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새마을 교육도 받게 했다. 곽대훈 달서구청장은 “기관 간 교류가 자연스레 민간 분야로 확대됐다. 후원회가 두 지역의 화합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그는 카우빌리지의 성공을 확신한다. 후원회가 3년 전 탐키시의 탐 응억 마을에 지원한 트랙터 두 대가 현재 15대로 불어난 점을 들었다. 주민들은 트랙터를 활용하기 위해 논을 반듯하게 정리하고 생산성을 높였다. 그는 “소득이 오르면서 기계화 영농에 가속도가 붙었다”며 “카우빌리지 사업도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마음이 편치 않은 점도 있다.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굳이 외국 농민을 돕느냐는 시선 때문이다. 그는 6·25전쟁 때 우리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은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베트남은 우리가 참전한 나라인 만큼 더 관심을 둬야 한다고 했다. 허 회장은 “베트남 농민의 홀로서기를 돕는 것은 우리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일”이라며 “식수가 부족한 농민을 위해 지하수를 파는 일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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