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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시골에 암소 전달 ‘부농의 꿈’ 선물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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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소년의 집에는 소가 없었다. 소 먹이러 가는 아이들이 부럽기만 했다. “소 한 마리만 있었으면….”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식구가 연명할 정도인 그의 집으로선 너무나 큰 재산이기 때문이다.

 50여 년 뒤 베트남의 농촌 마을에서 소년의 꿈이 영글고 있다. 농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소를 사줬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카우빌리지(Cow Village) 조성사업’을 펴고 있는 허노열(65·사진) 카우빌리지 달서후원회장. 그는 대구 성서공단에서 PVC파이프 제조업체인 ㈜용전을 운영하고 있다.

 허 회장은 지난달 4일 달서구청의 우호도시인 베트남 중부 탐키시의 탐탕마을 34가구에 암소 구입비와 예방접종비 등 2500만원을 전달했다. 이 돈은 허 회장과 회원 5명이 모았다. 한 마리에 65만원 안팎인 소 구입비의 90%를 후원회가 대고 농민들이 10%를 부담한다. 이 소로 농사를 지으며 부농의 꿈을 키우게 된다. 새끼를 낳으면 농민이 소유한다.

 후원회 측은 암소 한 마리가 3년간 송아지 두 마리는 낳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 구입자금은 3년 뒤 갚아야 한다. 이를 위해 탐탕마을 농민회 대표와 탐키시 관계자, 수의사 등으로 카우빌리지 관리위원회를 만들었다. 소가 전염병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죽으면 자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 반환된 자금은 같은 식으로 다른 농가에 지원된다.

허노열 회장(앞줄 왼쪽에서 넷째)이 베트남 탐탕마을 주민에게 소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달서구청]

 허 회장이 이 마을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1년 7월이다. 달서구가 탐키시와 교류 협약할 때 동행하면서다. 당시 그는 달서구새마을회를 이끌었다. 탐키시의 농촌은 옛날 우리와 비슷했다. 시멘트 바닥에 돗자리만 깔고 사는 빈곤층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이들을 위해 뭔가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소를 키우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다. 허 회장은 “우리도 과거에 소를 키워 자녀를 교육시키고 살림을 일으키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는 달서구 지역 인사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후원회를 구성했다. 탐탕마을 젊은이 세 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새마을 교육도 받게 했다. 곽대훈 달서구청장은 “기관 간 교류가 자연스레 민간 분야로 확대됐다. 후원회가 두 지역의 화합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그는 카우빌리지의 성공을 확신한다. 후원회가 3년 전 탐키시의 탐 응억 마을에 지원한 트랙터 두 대가 현재 15대로 불어난 점을 들었다. 주민들은 트랙터를 활용하기 위해 논을 반듯하게 정리하고 생산성을 높였다. 그는 “소득이 오르면서 기계화 영농에 가속도가 붙었다”며 “카우빌리지 사업도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마음이 편치 않은 점도 있다.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굳이 외국 농민을 돕느냐는 시선 때문이다. 그는 6·25전쟁 때 우리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은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베트남은 우리가 참전한 나라인 만큼 더 관심을 둬야 한다고 했다. 허 회장은 “베트남 농민의 홀로서기를 돕는 것은 우리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일”이라며 “식수가 부족한 농민을 위해 지하수를 파는 일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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