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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쓰는 해외교육 리포트] <40> 벨기에 브뤼셀 에콜 싱글레인 사립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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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에서 학교 다니면 3개 언어 유창하게 해요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에콜 싱글레인 사립학교 수업은 교사의 짧은 설명 뒤에 학생들의 발표·토론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이 과학 시간에 레고를 이용해 풍차와 건물을 만들어 자연재해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현명희씨]

다양한 인종 어울리는 국제도시, 차이는 있어도 차별은 없어
다운증후군 아이 위해 전교생이 짝짝이 양말로 등교하기도
부족한 과목 지적 대신 잘하는 걸 칭찬…학력 따라 월반·유급

江南通新이 ‘엄마(아빠)가 쓰는 해외교육 리포트’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 엄마(아빠)들이 직접 그 나라 교육 시스템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 드립니다.

브뤼셀 직업인 4분의 1이 국제기구 공무원

왼쪽부터 첫째 엠마, 엄마 현명희(43·벨기에 브뤼셀·전업주부)씨, 남편 램브레 크리스 토프, 둘째 가브리엘. [사진 현명희씨]

벨기에는 ‘유럽의 관문’ 또는 ‘유럽의 축소판’으로 불리는 나라다. 지리적으로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마주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네덜란드, 동쪽으로 독일, 남쪽으로는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게르만·라틴·앵글로색슨 등 유럽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언어권이 교차하는 곳이다. 인종 구성도 네덜란드계·프랑스계·독일계 등으로 다양하고 언어 또한 네덜란드어·프랑스어·독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영어까지 포함해 벨기에 사람이라면 3~4개 언어를 유창하게 쓴다. 벨기에는 유럽을 읽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벨기에는 2004년 남편(램브레 크리스토프, 45, 철도 엔지니어)과 결혼하면서 오게 됐다. 그동안 한국과 벨기에를 오가다가 2011년부터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에 정착했다. 브뤼셀은 인구 100만 명의 작은 도시지만 오래전부터 국제도시로 성장해왔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세계철강협회 등 유럽의 주요 국제기구가 모두 이곳에 밀집해있다. 브뤼셀에서 직업을 갖고 생업을 유지하는 사람의 4분의 1 정도가 이런 국제기구에 다니는 공무원이다. 브뤼셀이 유럽의 행정 수도인 셈이다. 세계 각국의 글로벌 기업도 브뤼셀에 유럽 본부를 두고 있다. 브뤼셀의 거리를 잠깐만 걸어도 정말 많은 나라, 많은 인종을 만나볼 수 있다. 작은 지구촌 같은 느낌이다.

 이런 특성은 학교에도 녹아든다. 공립·사립 모두 학교 자체가 세계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다. 첫째 엠마(딸·10)와 둘째 가브리엘(아들·7)은 브뤼셀에 있는 에콜 싱글레인 사립학교(Ecole Singelijn)를 함께 다니고 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과정을 운영하는 학교인데, 첫째는 5학년 둘째는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엠마는 1학년 때 3학년으로 월반해서 나이가 어린데도 5학년에 다니고 있다. 이 학교에는 유럽의 여러 국가뿐 아니라 미국·중국·일본·아프리카·중동까지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이 함께 다닌다. 브뤼셀의 작은 사립학교일 뿐인데 가끔은 국제학교라고 착각할 정도다. 주변의 공립학교도 비슷한 분위기다. 브뤼셀에선 이처럼 굳이 국제학교를 찾지 않아도 일반적인 공립·사립학교를 다니면서 세계 여러 문화를 경험해보고 다양한 언어를 익힐 수 있다. 브뤼셀에서 학교에 다녔다면 네덜란드어·프랑스어·영어까지 3개 언어는 유창하게 한다고 보면 된다.

하급생 돌보는 상급생 제도 등 인성 강조

학생들의 발표 자료가 벽면을 장식한 교실. [사진 현명희씨]

이런 환경은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으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벨기에도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교육에 있어 평등을 강조하는 나라다. 벨기에의 사립학교는 학교 설립자의 교육 철학에 따라 독특한 교육을 위해 운영하는 것일 뿐 학비가 비싼 곳이 아니다. 지금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1년 학비가 1000유로(한화 약 124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이곳에선 경제적으로 큰 부담 없이 사립학교를 보낼 수 있다. 만 6~18세까지 의무교육인데, 공립학교는 모두 무료다. 최근 아프리카·중동 등에서 많은 수의 난민들이 브뤼셀로 들어왔는데, 이들 또한 차별 없이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벨기에 학교는 차이는 인정해도 차별은 없다는 것이 원칙이다. 다양한 문화권과 인종이 어울려 살다 보니 융합과 공존을 강조한다.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자세를 가장 먼저 가르친다.

첫째인 엠마가 3학년 때 일이다. 학교 갈 준비를 하던 아이가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있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학교에서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오라고 했다는 거다. 이상하게 생각하며 학교까지 바래다줬는데, 그날 전교생이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등교를 했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학교에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날 그 아이의 사진과 다운증후군에 대한 설명이 학교 건물 곳곳에 붙었다. 양말을 짝짝이로 신은 건 색과 모양이 달라도 양말이라는 본질은 같은 것처럼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와 보통의 아이들도 같은 학생일 뿐이라는 사실을 가르치는 수업이었던 거다. 그날 전교생이 함께한 그 수업은 그 학교의 단 한 명의 다운증후군 아이를 위해 마련된 수업이었다. 단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고 함께 가는 배려심에 놀랐고, 또한 그것을 전교생이 함께 고민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는 교육에서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한 가지 독특한 제도가 있다. 상급생이 하급생을 돌보는 제도다. 이 학교에선 6학년 아이들은 유치원 아이들을, 5학년 학생들은 2학년 학생들을 한 명씩 맡아 학교 안에서 돌본다. 6학년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식사 때마다 짝을 이루는 유치원 아이를 찾아가 불편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고 낮잠 도우미를 한다. 5학년은 시간이 날 때마다 2학년 짝을 찾아가 책 읽어주는 활동을 한다. 엠마도 5학년이 되면서 2학년 아이에게 매일 책을 읽어주고 있다. 엠마가 이 활동을 시작한 이후 부쩍 어른스러워졌다. 길을 가다가 자기보다 어린아이를 만나면 먼저 인사하고, 건널목에서 혹시나 사고가 나진 않을까 걱정하며 먼저 다가가서 좌우를 살펴주기도 한다. 고학년으로서 책임감은 물론 사람에 대한 애정과 남을 배려하는 인성까지 두루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이런 교육 때문인지 벨기에 사람들은 장애는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일 뿐 차별이 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보여준다. 브뤼셀 거리를 걷다 보면 장애를 가진 사람과 함께 쇼핑하고 즐겁게 식사를 즐기는 가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국 같으면 장애를 숨기기 바쁘겠지만 벨기에 사람들은 함께 거리를 걷는다. 차이를 포용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국민성은 이런 교육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매년 5월에 열리는 학교 축제 때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 주변 퍼레이드를 벌인다. [사진 현명희씨]

벨기에 교육 제1원칙 “이걸 하면 행복하니”

싱글레인의 교육철학은 학생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재능을 키울 수 있는 자유로운 수업으로 집약된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걸 하면 행복하니? 네가 행복하다면 해도 좋다”라는 말이다. 아이들의 행복이 무엇보다 우선한다. 교사는 수업 내내 “OO는 발표를 잘해, OO는 참 예쁘게 웃는구나, OO는 인사를 참 잘해” 등 학생 한 명 한 명을 칭찬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정도다. 아이들을 등수로 나누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심지어 시험이 아예 없다. 시험이 없으니 등수도 없다. 1년에 네 차례 수업평가서가 나오는데, 평가서 안엔 A~D까지 네 등급으로만 나뉜 성적과 수업 중 아이의 태도와 발표, 이해 정도를 꼼꼼하게 기록한 교사의 평가가 담긴다. A4 용지로 4~5장 분량에 달할 정도로 세세하다. 학교가 아이를 얼마나 세심하게 가르치는지 평가서만 받아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다양한 인종이 섞인 싱글레인의 교실 풍경. [사진 현명희씨]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이 학교에선 프랑스어·네덜란드어·역사·과학·수학·종교·체육·미술이 주 수업인데, 어떤 아이가 한 과목만 B를 받았다. 그 엄마는 교육열이 높은 엄마였다. B를 받은 과목을 어떻게 하면 A를 받을 수 있을지 상담하기 위해 담임교사를 찾았다. 그런데 담임교사는 왜 이런 일로 상담을 받으러 오느냐며 그 엄마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 교사는 B를 받은 한 과목보다는 A를 받은 다른 많은 과목에 눈을 돌리라고 충고했단다. 조금 부족한 과목으로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고 잘하는 과목을 칭찬해줘서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적으로 줄 세우기에 바쁜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성적보단 아이의 재능과 가능성, 즐거움에 더 큰 무게를 둔다.

 학교가 이러면 혹시나 학력 수준이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함께 가는 교육을 표방하면서도 특출난 재능에 대해 인정하고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둔다. 학력 수준이 높은 아이들은 월반한다. 엠마가 그랬다. 1학년 때 3학년으로 월반했다. 단, 이때도 중요한 것은 아이의 행복이다. 실력만 뛰어나다고 월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월반을 결정하는 과정이 독특하다. 교장과 담임교사 면담은 물론 지역 교육청 담당관과 면담을 해야 했다. 아이가 월반해도 동급생과 어려움 없이 잘 어울릴 수 있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됐다. 아이의 성향과 성격, 사회성 등을 두루 따져서 월반을 허락한다. 머리만 뛰어나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가 월반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아 학교생활이 불행해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올해 5월에 열렸던 학교 축제 주제는 서커스였다. 알록달록 예쁜 옷으로 치장한 학생들.

 아이들은 매일 학교 갈 시간만 기다릴 정도로 학교를 정말 좋아한다. 엠마와 가브리엘은 “수업이 정말 재미있다”고 한다. 수업에 참관해보고 정말 놀랐던 것은 아이들의 적극성이었다. 학교의 모든 수업은 교사의 짧은 설명 뒤에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된다. 교사가 질문할 때마다 반 아이들 모두가 손을 들면서 자기가 발표하겠다고 하는 통에 수업은 항상 시끌시끌하다. 교사는 아무리 엉뚱한 대답에도 연신 웃으면서 “네 말이 맞다”고 맞장구를 쳐준다. 답이 틀리면 어쩌나, 반 친구들 앞에서 창피하진 않겠냐는 걱정 자체가 없다.

 교사의 태도뿐 아니라 수업 자체도 알차다. 1년에 한 번씩 4~5일 일정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데, 수학여행 전 한 달 동안 농장·숲·바닷가·박물관 등 그 해의 테마에 대해 과목 간 연계수업을 진행한다. 엠마는 올해 벨기에 유명 작가인 조르주 심농의 고향과 박물관을 다녀왔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 한 달 동안 프랑스어 수업 시간에는 심농의 작품을 읽었고, 수학 시간에는 심농의 고향인 ‘리에주’라는 지역까지의 거리를 계산해보고 축소·확대의 개념을 배워 지도를 읽는 수업을 했다. 역사 수업에선 작가가 활동했던 시대 배경을 알아봤고, 지리 수업에선 ‘리에주’의 지리적 특성을 배웠다.

 아이들의 행복을 강조하면서도 최소한의 학력 검증은 철저하게 한다. 벨기에에선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전국 단위의 평가고사를 치른다. 이때 기준점을 넘기지 못하면 유급해 6학년을 다시 다녀야 한다. 매해 벨기에 전체에서 3% 정도가 유급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벨기에 대학은 별도의 입학시험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원하는 대학·학과에 진학할 수 있다. 의대·법대도 그렇다. 유일하게 공대만 수학·과학 관련 지식을 평가한다. 하지만 대학 입학 후엔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다. 입학 후에 학교가 요구하는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면 다른 대학·학과로 전학을 가거나 대학을 그만둬야 한다. 대학 졸업 비율은 30%로 낮다. 평등을 강조하면서도 기회에는 노력과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정리=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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