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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 아시아 자본 언제 이렇게 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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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가 급성장하면서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사 지형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터줏대감이던 서구 금융사들이 주춤한 사이 아시아 금융사의 진출이 부쩍 늘고 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만 푸본생명보험(富邦人壽)은 지난 22일 현대라이프생명보험에 22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대만 자본이 국내 보험사에 진출하는 첫 사례다. 투자의 무게도 예사롭지 않다. 푸본생명은 48%의 지분율을 확보해 단숨에 2대 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대만 언론도 “11개의 이사회 의석 중 5개를 확보했다. 최대 주주인 현대차그룹과 거의 같은 비중”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푸본생명은 대만 내 2위 보험업체이며, 푸본생명이 소속돼 있는 푸본금융그룹은 총자산 200조원의 대만 최대 금융그룹이다. 앞서 지난 10일에는 중국의 안방보험이 중국 자본으로는 처음 한국 금융사인 동양생명을 인수했다. 금융위원회는 장고 끝에 승인 결정을 내렸고 안방보험은 동양생명 지분 63%를 인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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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 최대 국영은행인 네가라인도네시아은행(BNI)도 한국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 4월 금융위에서 한국지점 설립 예비인가를 얻었고 현재 본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1000개 이상의 지점을 갖고 있는 BNI는 한국 내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로 송금·환전 등의 영업을 할 계획이다. 현재 국내에서 영업 중인 동남아 은행은 필리핀메트로은행 한 곳뿐이다. 인도 최대 은행인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SBI)도 한국 시장에 뛰어들 태세다. 2013년 서울사무소를 설립한 SBI는 연내에 사무소를 지점으로 전환해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인도계 기업이나 인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 기업 등을 상대로 무역금융 등 업무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아시아 금융사들의 덩치도 계속 커지고 있다. 은행연합회 공시 자료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공상·교통·건설·농업·중국은행 등 5대 중국계 은행의 한국지점 총자산은 53조6000억여원으로 1년 전의 33조2000억여원보다 20조원 이상 늘었다. 2013년 말까지만 해도 중국계 은행들의 자산은 일본계와 영국계보다 많이 적었지만 불과 1년 만에 전세가 역전됐다. 한국 금리보다 1%포인트 정도 높은 위안화 예금에 국내 금융사·기관들의 자금이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아시아 금융사의 강세는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과 풍부한 유동성,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노력 등이 결부된 결과다.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자칫하면 시장만 빼앗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안방보험의 동양생명 인수 당시 금융권에는 ‘상호주의’ 논란이 만만치 않았다. 중국이 외국계 지분 제한 등의 조치를 통해 자국 보험시장을 보호하고 있는데 한국만 개방하는 건 불공평하다는 주장이었다. 더구나 중국 자본은 우리은행·KDB대우증권·ING생명 등 대형 매물의 잠재적 인수자로도 지목되고 있어 경계심은 더 커지고 있다. 동남아와 인도 은행들은 막 불붙기 시작한 국내 은행의 외국인 고객 유치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정적 평가만 있는 건 아니다. 이주혁 현대라이프생명 대표이사는 푸본생명의 지분 투자와 관련해 “단순 지분 투자가 아니라 서로 장기적 성장을 위한 최적의 파트너를 만난 것”이라며 “현대카드가 GE의 지분 투자를 통해 급성장했던 것처럼 푸본생명의 자본과 노하우를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본생명 역시 대만 언론을 통해 현대차그룹과의 동반 중국 진출이나 한국 내 합작 금융사 설립, 카드사업 확대 등에 대한 기대감을 피력했다. 하기에 따라선 서로 파이를 키우는 ‘윈윈 게임’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동남아 금융사의 국내 진출에 대해서도 ‘상호주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실제 BNI 서울지점 설립은 지난 4월 내려진 신한은행의 인도네시아 뱅크메트로익스프레스은행 인수 허용 결정에 대한 반대급부 성격이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아시아 금융사의 한국 진출은 막을 일도 아니고 막을 수도 없다”며 “다만 이왕이면 양쪽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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