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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0)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 (133)|서양화단의 "삼총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정월 나혜석에 이어 그무렵 같은 서양화가로 나타나 비범한 재질을 보여주어 장래가 크게 촉망되던 젊은 화가에 강신호가 있었다. 「선전」제3회에 입선되더니, 제4회에는『정물』로 특선되었고, 제5회에는『의자』로 특선, 제6회에는 『작품제9』로 연거푸 특선을 따내 심사원으로부터 귀재라는 이름을 들었다. 그러던 것이 그의 고향인 진주 남강에서 수영하다가 익사하는 참변을 당했다.
이 강신호를 빼놓으면 이승만·김종태·윤희순의 세사람이 그당시 「삼총사」로 불리던 양화계의 총아라고 할수 있다.
이승만은 제4회에 『라일락』으로 특선된 것을 비롯해 제6회에 『사월풍경』으로 특선, 제7회에는 『풍경』으로 특선을 따서 세번 특선되었다. 김종태는 제6회에 『어린이』로 특선, 제7화에 『포즈』로 특선, 제8회에『오수』로 특선, 제9회에 『봄볕을 쪼이며』로, 특선, 제12회에는『좌상』으로 특선되어 다섯 번 특선을 땄다. 끝으로 윤희순은 제9회에『노란 저고리의 소녀』로 단 한번밖에 특선을 따지 못했지만 비평가로 이름을 얻었고 나이가 동년배이므로 이승만·김종태와 함께「삼총사」로 불리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특선이 우스운 것 같지만 그때에는 신문이 호외를 내 입선 발표를 알려주고 특선이 되면 신문 사회면에 커다랗게 가정을 방문한 기사가 날 지경으로 큰 명예가 되었다. 그러므로 연거푸 특선이 되면 그것은 뽐낼 만한 일이 되었다.
김종태는 스물세살때 「선전」에 특선이 되었으므로 그 으스대는 폼이 대단하였다. 그는 김포출신으로 서울에 올라와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주교보통학교의 선생이 되었다. 보통학교 선생으로 『선전』에서 특선을 연거푸 따냈으니 학교에서는 그를 신주 모시듯 위할수 밖에 없었다.
이것을 이용해 김종태는 우선 잡무로 바쁘고 성가신 반담임을 면하였다. 교장을 구워삶아 미술만읕 가르치는 도화 전담교사가 되었다. 자기 혼자만 되지 않고 경성사범학교 동창으로 갑은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윤희순도 음악을 잘한다고 해 자기와 동시에 음악 전담교사가 되게 하였다. 이렇게 둘이 반 담임교사를 면하고 자유로운 도화나 음악의 전임교사가 되어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김종태의 나쁜 버릇이 나타나기 시작해 보통학교선생의 신분으로 바에 들어가 값비싼 양주만 마시고 다녔다. 그때 보통학교 선생 월급이 35원이었는데, 다른 사람은 이것을 가지고 수다식구를 먹여 살리는 터에 김종태는 독신이면서 이것이 늘 모자라 돈을 꾸려 다니고 법석이었다. 만만한 것은 미혼의 여선생이어서 이들에게 돌려가면서 돈을 꾸었다. 돈을 꾸어가면 갚는 법이 없었다. 월급날이 되면 학교 현관에 빚장이가 늘어서는데, 김종태는 돈 한푼 남지 않은 빈봉투률 들고 뒷문으로 도망질쳐 나가버렸다.
여선생에게 꾼 돈과 애들의 수업료까지 써버렸으므로 교장이 이것을 알고 불러다가 야단을 쳤지만 김종태는 눈만 깜박거리고 듣지 않았다. 김종태에게는 큰 빽이 있었다. 총독부학무국 시학관인 고교빈길이「선전」고문을 겸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그림을 좋아해서 김종태한테 호의를 가졌다. 이것을 안 김종태는 좋은 그림을 주고 고교에게 부탁해 고교가 전화로 주교보통학교 교장한테 김종태를 잘봐 달라고 부탁하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교장이 꼼짝못하게 만들어 놓고 김종태는 학교 속에서 더욱 방자하게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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