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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리포트 24] 하루 16시간 공부, 공부, 공부 … 사시 붙고 또 ‘5급 고시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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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24일 자정 경기도 고양시 일산 사법연수원 2층 도서관. 660㎡(약 200평) 남짓한 도서관 열람실에서 50여 명의 연수생이 공부를 하고 있다. 이제 10시간 뒤면 1년차 사법연수생(46기)들의 연수원 첫 시험이 시작된다.

사법연수생들의 24시간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수업 전후로 스터디가 이어진다. 연수생들은 “사법시험 2차 시험을 계속해서 치르고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몇몇 연수생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땀방울이 노트 위로 떨어지는데도 미동조차 없다. 의자 움직이는 소리만 들릴 정도다. 같은 시각 연수원 인근 독서실 ‘신녹원’에도 연수생 50여 명이 밤을 새우고 있다. 이들은 도서관의 찜통더위를 피해 이곳에서 공부한다. 정수기에서 물을 뜨러 나오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연수생들은 1주일간(6월 24일~7월 1일) 여덟 과목의 시험을 본다. 교재와 나눠준 프린트물을 합친 시험 범위는 4200여 쪽. 1년차는 그나마 낫다. 2년차 땐 한 과목 시험시간이 8시간인 경우도 있다. 연수원생을 두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또다시 고시생 생활을 하는 ‘5급 고시생(별정직 5급 공무원+고시생)’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법조계에선 올해 1년차 연수생부터를 ‘마지막 연수생 세대’로 본다. 2011년 1000여 명이던 연수원생 수가 지속적으로 줄다가 올해는 200명대(230명)로 떨어졌다. 사법시험은 2017년 2차 시험(50명 선발 예정)을 마지막으로 폐지된다.

 변호사 취업난 속에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30%가량이 판검사로 임용됐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약 10%만이 재판연구원과 검사로 임용되고 있다. 연수생 김동우(36)씨는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은 연수생은 성적이 우수하지 않으면 취업이 어렵다. 더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5급 고시생’의 하루는 아침 7시쯤 시작된다. 이른 시간이지만 수십 명이 아침을 때우러 인근 김밥집이나 편의점으로 향한다. 공식적인 자율학습 시간은 오전 9시, 수업은 10시부터지만 대부분이 아침 자습이나 스터디를 하기 때문이다. 몇몇은 식사를 마친 자리에서 홍삼이나 녹용, 마늘진액을 입에 털어넣는다. 전날 공부로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오전 10시부터 1시간50분간 이어지는 수업을 마치면 점심시간이다. 오후 1시30분부터 시작되는 다음 수업 전까지 주어진 시간은 100분 남짓. 하지만 이 시간을 온전히 점심 먹는 데 쓰는 연수생은 드물다. 수업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연수생 중 30여 명이 연수원 바로 옆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방에서 점심을 챙겨먹고 짬짬이 공부하기 위해서다. 김윤식(32)씨는 “공부를 하려면 데이트나 체력 단련 등 개인 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까지 쪼개고, 또 쪼개야 한다”고 말했다.

 오후 5시20분. 수업을 마친 연수생들은 본관 도서관으로 향했다. 자리마다 교재와 노트들이 쌓여 있다. 연수생들의 공부는 사실상 이때부터 시작이다. 저녁을 먹고 그날 공부한 것들을 정리하거나 시험 준비를 한다. 연수생이 1000명일 때는 개인 좌석으로 이용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200명대인 지금은 사실상 독서실처럼 운영되고 있다.

 밤 11시가 되자 기숙사 도서관 스터디룸에 연수생들이 삼삼오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야간 스터디’를 하러 모이는 것이다. 스터디는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끝난다. 연수생 이정준(27)씨는 “새벽 3~4시까지 모여 스터디하는 일이 흔하다”며 “시험 두 달 전부터는 주말에도 일산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아 ‘일산 프리즌(감옥)’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했다.

 로스쿨이라는 대안이 있는데도 이들이 사법시험을 택한 이유는 뭘까. 연수생 이진영(39·여)씨는 “사법시험은 개개인의 노력에 따라 좌우되는 공정한 시험이란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정수진 사법연수원 교수(판사)는 “40여 년간 명맥을 이어온 ‘연수원 출신 법조인’ 시대가 3년 후 막을 내린다는 데 대해 많은 법조인이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며 “이곳에 축적된 법조인 양성 노하우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양=조혜경 기자 wiselie@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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