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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문」활짝…86·88앞서 비동맹 외교활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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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중국대륙에 처음 태극기가 휘날렸다. 상해에선 애국가가 울렸다. 그런가하면 서울에 나타난 대륙의 거인들은 시종 미소지으며 우호를 강조했다.
국제스포츠사회에서의 한국의위치, 특히 86·88두차례 국제대회의 서울유치와 세계10위에 오른 한국 스포츠의 괄목할만한 성장이 이러한 교류를 촉진시킨셈이다.
한국스포츠 사절로 처음 중국땅을 밟은 것은 테니스 대표팀. 84년 데이비스컵 동부지역 2차예선에 출전하는 대표단 8명은 3월25일 곤명에 도착, 직접교류의 길을텄다. 이에 응답이라도하듯 한달만에 중공선수단이 한국을 찾았다. 제8회 아시아 청소년 농구선수권대회에 중공 남녀선수단 34명이 참가한 것이다.
이후 아시아 축구연맹총회 (4월8∼10일·중공(광주)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4월28일∼5월3일·서울)에 상호 대표단을 파견했으며 아시아올림픽 평의회총회 (9월28∼30일·서울)때는 북경관리와 체육회 고위임원, 기자들도 찾아왔다.
10월13일 상해에서 열린 아시아여자 농구선수권 대회에는 10명의 한국기자들이 들어갔다. 순수한 경기취재라는 주문이 붙어있었다. 한국이 막판 역전으로 1점차의 극적 우승을 차지한 순간, 중공관중들은 침통한 감정을 억누르며 한국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미덕을 보였다. 이때 한국의 호칭은 조선이 아닌 한국, 사우드 코리아가 아니 코리아였다.
이 같은 움직임을 시작으로 한국-중공간의 스포츠교류는 명년부터 더욱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중공과의 직접 교류에 이어 한국은 여자농구·야구가 쿠바에 입국, 스포츠 교류를 펼쳤다.
84년에 중공과 쿠바와 직접교류를 전개한 한국은 이제 북한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와의 폭넓은 교류로 86·88년을 앞둔 비동맹외교에 새장을 열게됐다.
새해들어 국내서 열리는 유도와 양궁의 세계 선수권대회와 복싱 월드컵대회, 그 밖의 국제초청대회엔 동독등 공산권팀도 다수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조이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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