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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 커플도 혼인신고 안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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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K씨(73)는 1995년 전처 소생 자녀 4명을 둔 L씨와 결혼식을 올린 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결혼 생활을 해왔다. 문제는 2008년 L씨가 숨지면서 시작됐다. K씨는 13년간 부부로 살아온 L씨의 재산을 한 푼도 못 받았기 때문이다. K씨는 서울가정법원에 “L씨 자녀들에게서 20억원을 받게 해달라”며 재산 분할 소송을 냈지만 패소하고 말았다. 재판부는 “사실혼 관계가 한쪽의 사망으로 종료된 경우 남은 상대방의 재산 분할 청구권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혼을 할 때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2010년부터 5년간 선고된 사실혼 부당파기 소송 141건 가운데 64건(45.4%)은 최소한 한쪽에 법률혼 경험이 있는 재혼으로 나타났다. 사실혼 부부 중 재혼 비율이 법률혼 부부 중 재혼 비율(21.4%·통계청 통계)보다 높다는 얘기다.

 재혼 부부에게 특히 사실혼이 많은 것은 이혼의 아픔을 경험한 이들이 또다시 법률적으로 묶이는 것을 꺼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이효주 커플매니저는 “이혼율이 높아지다 보니 요즘엔 세 번째 결혼을 하는 회원들을 ‘삼혼(三婚)’으로 따로 분류해야 할 정도”라며 “다시 이혼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혼인신고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의 만류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혼 소송 당사자 중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로 ‘가족의 반대’를 드는 경우가 17.7%로 ‘상호 신뢰 부족’(46.1%) 다음으로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황혼 재혼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부모의 재혼으로 재산 분쟁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자녀들이 혼인신고를 하지 말라고 말리는 것이다.

 김현진(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법정상속분 비율이 배우자의 경우 1.5로 자녀(1)보다 높고 이는 사망 직전에 혼인신고를 해도 마찬가지”라며 “상속 재산이 있는 자녀들은 거의 모두가 혼인신고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배우자 생전에 가능한 재산 분할 인정 비율도 사실혼이 법률혼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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