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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권력의 사슬, 이번에 못 끊으면 막장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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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권성우

소설가 신경숙(52)씨의 일본 소설 표절 의혹에서 비롯된 문학 논쟁이 한국문단의 구조적 문제로 번지고 있다. 그 중심에 문학평론가 권성우(52·숙명여대 교수)씨가 있다. 그는 지난 16일 소설가 이응준(45)씨가 표절 의혹을 제기하자 계속해서 페이스북을 통해 신씨와 출판사 창비를 비판했다. 신씨가 소설책을 많이 낸 문학동네 출판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경숙의 타락에 문학동네 책임이 크다”고 했다. 그는 10여 년 전에도 ‘문단 기득권층’을 비판한 적이 있다. 권씨는 안식학기를 맞아 일본에 체류 중이다. 아일랜드 학술출장을 하루 앞둔 21일 전화 인터뷰했다. 

 - 신경숙씨의 소설 표절 의혹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01년 강준만씨와 함께 『문학권력』이라는 제목의 책을 써 당시 한국문학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지적한 바 있다. 그때 제기했던 문제들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어설프게 봉합됐다. 더 증폭해서 귀환한 게 이번 신씨의 표절 논란이다. 페이스북에도 썼지만 문제는 불거졌을 때 해결하지 않으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악화된 형태로 다시 돌아온다. 이번이 한국문학이 침체에서 벗어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문인이 많다. 표절을 포함해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 한국문학은 정말 막장까지 갈 수 있다.”

 - 구조적인 문제란. 

 “주요 문학출판사에서 작가에게 작품 청탁을 하거나 소설책을 출간할 때 선택과 배제의 원리가 작동한다. 그 과정에서 문학권력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권력이라는 게 거창한 개념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권력이 작동하지 않나. 신씨는 여러 차례 표절 논란에 휘말렸으면서도 말썽의 소지를 없애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영향력 막강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보니 출판사가 신씨 작품에 대한 엄정한 비판을 하지 못했던 거다. 신씨로서는 잘못된 글쓰기 습성을 고칠 기회를 얻지 못했다.”

 - 신씨의 잘못은 없나.

 “신씨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필사하며 문학을 공부했다. 호의적으로 보면 무의식에 저장된 다른 사람의 문장을 자기 문장처럼 썼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번 실수는 신씨 책임이다. 어쩌면 필사하며 문학을 공부한 한계가 나타난 거다. 하지만 신씨에 대한 마녀사냥식 비판은 반대다. 한국문단은 표절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했다. 재발 방지 노력도 미흡했다.”

- 문학권력은 한국문단 전체에 만연해 있나.

 “신씨의 경우 뚜렷하게 나타난 것 같다. 다른 문인들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10여 년 전 문학평론가 정문순씨가 이번에 문제된 신씨 소설 ‘전설’의 표절 의혹을 제기했을 때 제대로 고민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한국문단에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작품의 문제에 대해 논의를 주고받고 토론하는 과정이 있어야 작품이 좋아지고 단점도 극복할 수 있는데 신씨의 경우 그러지 못했다.”

 - 지금의 잘못된 출판·비평 시스템을 바꾸려면 어떻게.

 “의지만으로는 어렵다. 제도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상업 출판사로부터 중립적인 문예지를 세 종 정도 정부가 지원해 육성하는 건 어떨까. 무조건 칭찬만 하는 국내 문예지 서평 지면도 문제다. 90% 가량이 칭찬하고 감싸는 비평이다. 엄정한 비평이 최소한 30∼40%는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작가가 반성하고 좋은 작품을 쓴다.”

 - 표절 방지 대책은.

 “표절백서를 만드는 건 어떨까. 현재 모호한 상태인 문학작품의 표절 기준을 합리적 논의를 통해 확립하고, 제보도 받고 표절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백서에서 제외하는 거다. 질타하고 문제삼기 위한 백서가 아니다. 기록과 자료를 남겨 후대 작가들에게 긍정적인 압력이 되도록 하자는 거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권성우=1963년 서울 생. 서울대 국문 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 8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존재론적 고독에서 당신과의 만남으로-이인성론’으로 등단. 문예중앙·세계의문학 등의 편집위원 역임.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저서 『비평과 권력』 『낭만적 망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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