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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만의 귀환…국보급 문화재 호조태환권의 불편한 진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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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박근혜 정부는 문화재 반환을 외교 성과로 홍보해 왔다. 그 첫 번째 성과물은 2013년 9월 국내로 돌아온 호조태환권이다. 호조태환권은 조선 최초의 근대적 지폐를 찍어내던 원판이다. 구한말 화폐 개혁 당시 구화폐의 교환권을 찍어내던 동판으로 이것으로 찍어낸 지폐 한 장이 경매에서 9000만원에 거래된 적이 있어 원판의 가치는 상당할 것이라는 평가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미국으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돼 62년 만의 귀환한 셈이다.

당시 정부는 한미 수사공조를 통해 이 원판을 회수해 왔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JTBC 취재 결과, 호조태환권 반환 과정에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들이 확인됐다.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최고의 외교 성과로 여겨졌던 호조태환권 반환, 그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추적했다.

# 62년 만의 귀환
지난 2013년 9월 주한미국대사와 문화재청장이 한미 수사 공조를 통한 첫 문화재 환수를 기념하기 위해 대검찰청을 찾았다. 이날 성김 대사는 “이번 환수를 가능케 한 양국의 수사 공조는 강력한 한미 동맹을 보여주는 멋진 사례”라고 말했다.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도 “한국 전쟁 당시 미국으로 유출된 호조태환권 원판이 한미동맹 60주년이 되던 해에 이 땅에 돌아왔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언론도 ‘호조태환권의 귀환’을 앞 다퉈 보도했다.

사건은 지난 2010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미교포 사업가 윤모씨는 미국의 한 경매 사이트에 정상적으로 참여해 호조태환권 원판을 우리 돈 약 4000만원에 낙찰 받았다.
그런데 며칠 뒤 윤씨는 주미한국대사관 관계자 A씨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호조태환권 원판이 밀반출 된 것으로 한국 정부 소유”라며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고성 전화였다.
윤씨는 잔금을 치루지 않고 이후 한국대사관으로부터 모종의 조치가 있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더 이상 연락이 없자 결국 잔금을 치르고 원판을 인수했다. 이후 윤씨는 한 방송사에 원판을 공개하고 유튜브에 관련 동영상을 올렸다.

# 사건의 재구성
그런데 경매가 끝나고 3년 가까이 지난 2013년 1월 초 윤씨는 미 수사기관에 긴급 체포됐다. 장물 취득혐의가 적용된 것이다.
윤씨는 “17명의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는데 이게 뭔가 할 정도로 정신없었고 겁에 질려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체포 당시 10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2주 만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호조태환권을 장물로 볼 물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미 연방검찰의 기소철회 의견서와 연방법원의 기소철회 결정문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미동맹을 과시하며 양국 정부가 축제를 벌이고 있던 당시 재미교포 사업가 윤모씨는 호조태환권 ‘장물범’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윤씨의 피해는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풀려나기 전 호조태환권 원판을 몰수당했다. 경매에 들인 비용 5000만원도 한 푼도 보상받지 못했다.

# 다른 문화재 130여 점도 팔려…뒷짐 진 문화재청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호조태환권 환수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선의의 취득자는 보호한다는 원칙과 법적 판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류변완 홍익대 교수(법학)는 “약탈 문화재인지 모르고 취득했을 때는 당연히 처벌은 안 된다”고 말했다.
당시 사건을 보도했던 뉴욕타임즈는 해당 경매와 관련해 유독 윤씨만 체포됐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불법으로 취득한 장물이었다면 당연히 원판을 경매에서 판 미국인도 수사를 받아야했지만 오직 윤씨만 체포돼 수사를 받은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증거 없이 윤씨를 체포했다 뒤늦게 풀어준 미 수사당국의 행태도 문제지만 한미공조를 내세우며 잔치를 벌였던 우리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처음 경매에 호조태환권이 나온 2010년 문화재청은 주미대사관 측의 통보를 받고도 원판 회수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주미대사관 관계자 A씨는 “문화재청에서 가지고 가려는 노력을 보여야 되는데 우리 문화재청에서 제대로 감정을 안 해줬다”며 “한번 오라고 하니까 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당시 문화재청은 경매에 나온 문화재가 진품인지 여부를 사진 감정만 해준 정도였다. 또 그마저도 한덕수 당시 주미대사가 전화로 직접 요청한 후에야 이뤄졌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호조태환권과 함께 130여 점의 또 다른 한국 문화재가 같은 경매 사이트에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 뒤늦게 발동 걸린 미국…왜?

그런데 2012년 5월 미 수사당국은 돌연 이 원판의 소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원판이 불법 유출됐다는 사실을 증명할 어떤 증거도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 덕수궁에 보관돼 있었다는 추정만 있을 뿐 덕수궁 수장고 목록 자체가 없어 이를 문서로 증명할 수단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이상찬 서울대 교수(국사학)는 “덕수궁에서 가져갔다는 것도 자료로 인정을 해야 한다. 또 덕수궁에 있었다고 해서 그게 대한민국 소유냐 그걸 문화재청이 입증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씨는 호조태환권 환수를 두고 “순전히 ‘미국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은 그동안 불법 반출 문화재라는 증거를 한국이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돌려줄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호조태환권 원판 반환 직후 반환 결정이 내려진 조선 국새나 문정왕후 어보도 마찬가지 절차를 통해 반환된 사례다.
국외 문화재 환수 운동을 벌이고 있는 혜문 스님(문화재 제자리찾기 운동 대표)은 “문정왕후 어보의 경우 종묘 여섯 번째 방에 있었다는 것이 문서로 증명이 다 됐고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도난품이라는 것 역시 증명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호조태환권 환수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우리 정부는 미 수사기관에 미루는 듯한 입장을 보였다.

# “난 아직도 장물범”

‘한미수사공조’에 따른 큰 성과물로 포장되는 사이 정작 한 국민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 결과를 낳았다.
당시 윤씨가 경매에서 낙찰 받지 않고 다른 미국인이 낙찰 받았다면 과연 미국 정부가 이를 강제로 빼앗아 한국 정부에 돌려줬을까 의심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정부는 스스로 적법한 거래라고 했던 한국 교포의 경매물을 강제로 빼앗아 한국 정부에 건넸고 우리 정부는 반환 생색내기에 바빴던 셈이다. 그사이 우리 교민의 인권 문제에는 아무런 관심도 유감 표시도 없었다.

윤씨는 “여전히 나는 문화재 장물범으로 낙인찍혀 있다”며 “당시 정부가 국내 환수 절차를 상의해 왔다면 당연히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협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진택 JTBC 기자 jtl@jtbc.co.kr

♣ JTBC 뉴스룸 2부 탐사플러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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