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추상적 상념을 청각·시각적 처리로 잔재미|『가을…』=기교 지나쳐 이음에 무리가고 이미지 흐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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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시조 한수는 3장으로 이루어집니다. 3장이란 초장·중장·종장을 이름인데 응모작중에는아직도 3장형식을 모르고 쓰는 이도 있읍디다.
초장은 시작하는 장, 중장은 초장을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장, 종장은 전체를 마무리하는 장입니다. 여러수를 잇달아 연작하는 경우나 사설시조와 같이 장형의 시조나 한수가 3장으로 이루어지는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더러 단장시조니 양장시조니 하는것은 끝내 하나의 실험일뿐이고 시조 고유의 특성과도 거리가 먼것입니다.
사람의 정서나 논리는 4단계로 표현되는 일이 많습니다. 한시의 기승전결, 교향악의 4악장, 희곡이나 소설도 대개 4단계 구성법을 씁니다. 시조의 3장은 형태상으로는 3단 구성같이 보이지만 구조상으로는 역시 4단계형식이라는데 오묘한 맛이 있습니다. 종장이 한시의 전결구를 겸하므로 종장이 시조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는것을 특히 유의하기 바랍니다.
『달』에서 전선을 오선지로 보고 거기 걸린 달을 음표라고 한 표현이 매우 기발합니다. 글자 뒤에 숨은 각박한 정신적 상황을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들녘에서』의 종장이 보여준 기법이 놀랍습니다. 추상적 상법을 청각영상으로 제시하고 다시 시각영상으로 구상화하는 곡예를 부려 잔재미를 느끼게 합니다.
『노인』은 얼핏보아 애상적인 하나의 데생같지만 노인을 바라보는 작자의 눈빛속에는 애정이라고 할수있는 인정미가 깃들여 있어 즐겁습니다. 데생이 선만일때는 의미가 없지요. 살아 숨쉬는 생명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들국화』의 원제목은 「폐품 이용」이었습니다. 제목은 명찰이나 문패와 같은것이니 신경을 써야합니다. 하지만 각박한 현실을 풍요롭게 사는 지혜가 장합니다.
『가을 진남교』는 표현이 퍽 세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가람」의 기교가 지나쳐 도리어 이미지가 흐려지고 연맥에 무리가 간 듯 하군요. 연구해볼 만한 일입니다. <장정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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