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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공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부부가 같이 강단에 서다보니 이따금 서로의 상황을 비교케도 되고, 학생들 문제나 교과내용 따위도 화제로 떠오른다. 그런데 불가사의한 것은 엇비슷한 십여년의 교수생활에 한사람은 책상을 끼고 살면서도 쫓기는 형상이고, 또 한사람은 술이야 벗님이야 늘 한량같다는 점이다.
일요일 저녁 TV앞에 모로 누워서 이리저리 채널을 바꿔대는 남편에게 내가 중얼거렸다.
『이상도 하지. 술 마시랴, 신문·TV보랴, 언제 강의준비해서 그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지.』
『그것도 몰라. 나는 딴짓하면서도 머리속은 거룩한 생각뿐이고, 댁에서는 책상앞에서도 머리속에 잡념만 그득하니까 그럴 수 밖에.』
대충 이런 식의 우문현답에 옆에 계시던 어머님까지 한데 섞여 웃고 말았지만, 내 나름대로의 경험에 비추어「공부」라는 것이, 무언지 다시 생각 키울 때가 많다.
지금 이 나이에도 시험꿈을 꾼 적이 있다. 시험지 받아놓고 답안이 생각나질 않아 막막해지고, 요행히 깨어나서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기막힌 해방감을 맛본다. 그때는 잘 몰랐어도 분명코 지긋지긋한 시험을 숱하게 치르면서 배웠던 수많은 지식들,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젠 가령 미적분은 고사하고 고교생의 기하 증명같은 것도 감감해졌다.
그리스 자연철학의 황금시대를 살았던 수학자 「유클리드」(『기하원론』저술)에게「톨레미」대왕이 물었다.
『기하원론을 공부하는 것 말고 기하학을 배울 길은 없겠는가?』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읍니다.』
이 짤막한 대답은 학문의 길이 인고의 길임을 못박은 명언인 듯도 싶다.
어쩌면 삼당사락인가 하는 초인적 경지의 입시준비도 극기의 어려움을 체험케 하는 교육일 터인데, 참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길에서는 상당히 벗어난 것 같아 안타깝다.
멀쩡한 사람을 이모저모로 혼돈시키는 몇개의 답안에서 반드시 하나를 골라 잡아야만 하는 것에 길들여진 불가피한 대량교육의 환경.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사고, 말로나 글로의 깔끔한 의사표현능력이 하루아침에 깨달아 성취될 수 없는 성격이고 보면「논술」고사를 부과시켜야했던 조처의 의도만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덕분에 우리딸은 신문사설 읽으라는 엄마의 채근을 듣게됐지만 말이다.
최근 하버드대학에서 비슷한 보고가 나왔대서가 아니라, 옳게 생각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능력처럼 평생두고 값진 밑천은 없어 보인다. 거기에 소신껏 행동하는 의로움마저 갖춘다면 돈과 권력이 최고의 위력을 지닌 듯 보이는 세상일지라도 그런 것 개의치 않고 풍요롭게 한세상 마칠수 있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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