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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잡은 첫 승 놓쳤지만 희망을 쏜 ‘여자 박지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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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가을(오른쪽)은 14일 열린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코스타리카전에서 2-1로 앞서 가는 헤딩골을 터뜨렸다. 브라질과 1차전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날린 아픔을 딛고 넣은 골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후반 44분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해 2-2로 비겼고, 전가을은 활짝 웃지 못했다. [몬트리올 AP=뉴시스]

전가을(27·현대제철)이 한국 여자축구에 월드컵 첫 승점을 선물했다. 그러나 활짝 웃을 수는 없었다.

 전가을은 14일(한국시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2015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E조 조별리그 2차전 코스타리카와의 경기에서 2-1로 앞서는 헤딩골을 터뜨렸다. 후반 막판 동점골을 허용해 2-2로 비긴 한국은 2003년 미국에서 열린 여자 월드컵에 처음 참가한 이후 12년 만에 첫 승점(1점)을 따냈다. 남자축구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처음 나간 뒤 86년 멕시코 월드컵 불가리아전(1-1·승점1)에서 첫 승점을 얻기까지 32년이 걸렸다.

 한국은 전반 17분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4분 후 지소연(24·첼시 레이디스)이 페널티킥을 성공해 1-1을 만들었다. 전가을은 전반 25분 강유미(24·KSPO)가 오른쪽 측면에서 올려준 공을 받아 헤딩골을 넣었다. 자신(1m62㎝)보다 7㎝ 큰 상대와의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은 덕분이었다.

 전가을은 벤치로 달려가 윤덕여(54) 감독과 포옹했다. 박지성(34)이 2002년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골을 넣고 거스 히딩크 감독과 껴안던 모습과 비슷했다. 엄청난 활동량, 예리한 패스, 과감한 돌파를 자랑하는 전가을은 여자 대표팀에서 박지성 같은 역할을 한다. 포지션(공격형 미드필더)과 등번호(7번)도 박지성과 똑같다.

 코스타리카전을 앞두고 전가을은 밤잠을 설쳤다. 지난 10일 브라질에 0-2로 졌을 때 결정적인 골 기회를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전가을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전가을은 “다 맞는 말이다. 내가 전부 잘못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위축되지는 않았다. 승부욕이 강한 그는 코스타리카전에서 더 적극적으로 뛰어 골을 넣었다. 그는 “반드시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다. (강)유미와 미리 맞춘 시나리오였는데 잘 통했다”고 말했다.

 어릴 적 전가을은 ‘제2의 현정화’로 불릴 만큼 뛰어난 탁구 선수였다. 그러나 팔꿈치 부상을 당한 뒤 발을 쓰는 종목을 찾다가 열한 살 때 축구로 전향했다. 동생 전노을(23)씨는 “언니가 밤마다 어두운 운동장으로 끌고 갔다. 골대 앞에 나를 세워놓고 내 머리 위로 공을 차는 훈련을 했다. 일곱 살이었던 나는 오금이 저렸다”고 회상했다.

 축구를 시작한 후 전가을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치마도 입지 않았다. 체격조건이 뛰어난 서양 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 복근 운동을 하루 200번씩 했다. 계란과 단백질 쉐이크만 먹어 체지방률을 6%까지 낮춘 적도 있다. 남자의 평균 체지방률은 15~20%, 여자는 20~25% 정도다.

 그토록 좋아하는 축구를 하면서도 우는 날이 더 많았다. 여자축구는 여전히 비인기종목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월드컵 출정식에서 전가을은 “한국에서 여자축구 선수로 사는 게 외로웠다”며 눈물을 흘렸다.

 브라질에 패한 뒤에도, 코스타리카와 비긴 뒤에도 한국 선수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전가을의 월드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이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 감동적인 경기로 16강을 넘어 8강까지 가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조 4위(1무1패·승점1·골득실-2)로 처졌다.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조 3위 스페인(1무1패)을 반드시 이기고, 브라질이 코스타리카와 최소한 비겨주기를 바라야 한다. 어렵지만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몬트리올=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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