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억만장자, 교사보다 세율 낮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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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은 그저 최고경영자(CEO)들이나 헤지펀드 매니저들을 위한 것일 수 없다. 민주주의가 억만장자나 기업들만을 위한 것이어선 안 된다.” 미국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13일(현지시간)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뉴욕에서 첫 대중연설을 했다.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서도 목소리를 낮춘 채 핵심 지지 계층과 자원봉사자 저변을 훑고 다닌지 두 달 만이다. 그는 환호하는 5500여 명의 지지자들 앞에 파란색 정장 차림으로 등장했다.

힐러리 전 장관은 선거 캠페인의 화두를 제시했다. ‘꼭대기에 있는 이들’이 아니라 ‘평범한 미국인’을 위한 경제 재건이다. 미국 언론들은 힐러리 전 장관이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적인 의제를 내걸었다고 썼다.

연설의 표현은 자극적이었다. 대중과 소수의 상류층을 확연하게 갈랐다. 그는 “기업들은 기록적인 이윤을 올리고 CEO들은 기록적인 연봉을 받지만, 여러분들의 급여는 거의 변동이 없다”고 말했다. “상위 25명의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모든 유치원 교사들 급여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이 번다. 그런데도 흔히 더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해외에서 돈놀이하는 이들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고 미국에 투자하는 쪽에 보상이 돌아가도록 세법을 뜯어고치겠다”고 강조했다. 또 보편적인 유아원 교육유급휴가 확대 남녀 임금 평등 이익공유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등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힐러리가 던진 메시지는 2016년 미국 대선의 대표적인 키워드가 될 전망이다. 공화당의 정치 공세에 개의치 않고, 자신은 보통 미국인의 살림살이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성공 경험이 있다.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2년 선거에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구호를 내걸어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한 현직 대통령 조지 부시를 꺾었다.

‘포퓰리스트 힐러리’는 민주당 진보진영을 끌어안기 위한 계산이기도 하다. 골수 민주당원들은 소득 불평등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다루라고 힐러리를 압박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한 명인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연설은 힐러리가 최근 ‘신뢰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열렸다. CNN조사에서 응답자 57%는 힐러리에 대해 ‘정직하지 않다. 신뢰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국무장관 시절의 개인 이메일 사용, 가족 자선 재단의 석연찮은 후원금 등 의혹이 잇따르면서 철벽같았던 지지세력의 이탈자가 조금씩 늘고 있는 상황이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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