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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북한은 정말 대외문호를 개방할 생각이 있는가. 요즘와서 별안간 그들은 카메라를 의식하며 웃으려고 하는것 같다.
엊그제 열린 남북한 경제회담장에 나타난 그들의 표정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말씨도 바꾼듯 입에서 침이 튀는것 같은 정치맹부보다는 경제교역, 합자등 제법 회담을 진지하게 이끌어 나가려는 인상을 보였으며 또 제안에 있어서도 경의선철도의 복원 등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제시했다.
북한은 지난 9월8일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에서 전문 5장26조로 된 「합영법」이라는 것을 통과시켰다.
외국자본을 유치, 과실송금을 인정하는 「합영」의 내용은 공업·건설·운수·과학·기술·관광업을 비롯, 각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또 일정기간 「소득세」면제의 특혜 등 외국투자자본과 소득을 법으로 보호할 것도 명문화했다.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도가 뚜렷이 보인다.
바로 최근 북한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은 경제적 자력갱생의 원칙을 강조하고 이 원칙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국가간의 경제적·과학기술적 교류와 협력을 확대·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김일성의 소련과 동구방문도 그런데 뜻이 있는양 부연했다.
엊그제 노동신문은 한걸음 더나아가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강력한 경제협력」을 노골적으로 촉구했다. 이 기관지는 북한이 공산국가들과의 무역관계를 강화해야함은 물론 비동맹국·개발도상국및 자본주의국가들과도 경제 및 기술교류를 적극적으로 증진시켜야 할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북한노동당의 「급격한」정책변화는 김일성이 지난 5월16일부터 7월1일까지 소련을 비롯한 동구여러나라를 돌아보고 온뒤부터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강성산(정무원총리) 김영남(외상)이 연이어 중공을 방문, 경제특구를 시찰했고 그에 앞서 호요방중국공산당 서기장도 평양을 방문했다.
그동안 공산권중 이미 여러나라가 서방과의 합작회사설립을 위한 입법을 마쳤으며 공산-자본주의합작회사의 설립은 루마니아의 미국컴퓨터 부품공장(컨트롤데이터사), 중공의 해변휴양지회사, 헝가리의 화학공장등 날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중공은 지난 4월 14개도시를 특별경제구로 개방했으며 해외화교의 투자도 유치, 이미 10억달러에 달하고있다.
더구나 북한과 더불어 최후의 마르크스주의식 공산국가로 불리던 쿠바마저 아파트의 소유 등 사유재산제를 일부 허용, 내년부터 실시한다고 외신은 전한다.
이러한 공산권전반에 걸친 서방과의 합작추진경쟁에서 북한이 살아남을 길은 경제개방정책의 변화를 추진할수 밖에 없다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볼수 있다.
거기다 북한의 대내적인 경제사정은 보다 심각하다. 85년에 끝나는 제2차 7개년 계획의 실패는 북한주민들의 생활상태를 참담하게 만들고 있다.
작년엔 공업통계조차도 발표되지 않았다. 과중한 군사비부담 항목을 밝힐수 없는데 그 사정이 있을 것이다. 83년도만해도 북한의 GNP에서 차지하는 군사비비율은 23.8%로 세계최고를 기록한다. 주민1인당 GNP가 7백36달러밖에 안되는데 1인당 군사비부담은 1백75달러나 된다.
또 설비의 노후화와 기술수준이 낮아 생산성이 전혀 향상되지 못하고 있다.
생산성저하는 결국 노동자들에게 그 책임이 떠맡겨져 속도전·뇌격전이란 이름아래 노동력을 강화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리고 연간 수출총액의 2.5배가 되는 35억달러의 외채부담이 있다.
결국 북한은 제아무리 주체사상으로 정신무장을 하고 대포와 군함으로 무력을 강화해도 「경제」가 강해지지 않고는 힘을 쓸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김정일체제의 뿌리도 중공이나 소련의 「윤허」가 아니라 경제속에 내리지 않으면 흔들리기 쉽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중공이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부자 세습체제를 인정하는 대신 개방을 권고했다는 보도도 있지만 미국의 경제학자 「잰·베누스」박사는 『중공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보고 북한이 만약 이데올로기만을 고집하고 있다가는 중공으로부터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나온 행위』라고 북한의 변화에 대해 진단했다.
북한에서 한국의 회담제의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이러한 맥락에서 평가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의 일반적인 「협상룰」은 언제나 테이블위에 펴 놓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입장이 약하거나, 아니면 강할때만 협상에 응하는체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변화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의 「제스처」이지, 「생각」은 아니다. <양태조(중앙일보동서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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