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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힘과 씀씀이를 절제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며칠전 보도에서 과대광고업체들이 관계당국으로부터 경고, 혹은 시정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들었다. 이번에는 7O여업체가 무더기로 그런 일을 당했다니, 그동안 꽤 많은 소비자들이 또 선전에 속았고 불신의 잔을 마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과대광고의 폐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상품생산과 더불어 시작되었을 과대광고는 부정직하고 불신의 사회일수록 기승을 부릴것은 뻔한 일이다.
한때는 과대포장이 사회적인 지탄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이 또한 과대광고와 다를것이없다. 알맹이는 별것 아닌데 그것을 싼 포장은 보는이의 눈을 현란케 하고 자칫 알맹이 자체를 오인하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과대광고·과대포장이 말썽이 되는것은 그 실물이 선전이나 포장과는 거리가멀기 때문이다. 겉으로 나타나는 선전이나 포장은 화려한데 안에 있는 실물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외화내빈. 그 거리가 멀수록 실망이 커지는 법인데도.
우리 사회의 이러한 병리적현상은 자기를 과장·과신케 하는 포장술이나 선전술로 지나치게 발전되어 생활 곳곳에 스며들었다. 자신의 인간됨과 능력을 믿게 하고자 가문과 학벌로 포장하고,사업수완과 재무구조의 신용도를 높이기위해 이름있는 골프장회원권과 고급스런 자동차로 포장한 사업가들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성실과 애정의 바탕위에서 이뤄지고 거기에서 참다운 행복이 추구되어져야 할 결혼풍속도를 보아도 한때는 무슨 무슨 조건이 크게 문제되더니만 요즘은 혼수의 물량으로써 애정과 행복에의 미래를 포장하는 축도 없지 않게 된 모양이다. 호칭에도 포장술은 예외가 아니어서 지금은 사장님과 사모님의 만원시대요, 대학에서는 선생님이라고 하면 알맞을 호칭에 조교수님, 전임강사님, 시간강사님 하는 웃지못할 작태까지 벌어지고있다.
이런 지엽적인 상황과는 달리 가슴아프게 하는것이 있다.
그동안 잘되어 간다고 믿게하였던 우리나라의 경제가 사실은 과대선전되었다는 것이며 그 때문에 외국으로부터 오히려 손해를 보게되어 이제는 그진실을 정직하게 알려야하겠다는 것이다. 방송국해설위원의 소리도, 정부의 언명도 매우 밝기만 했고 우리 경제에 문제가있다고 비판하는 소리에는 어쩌면 적대의식같은 소신을 가지고 반박하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니 과대선전·과대포장은 장사꾼들만 써먹은수법이 아니었구나 하는 느낌마저 든다. 정부발표의 진의야 어디에 있건 그동안 과대선전·과대포장된 우리 경제의 진실을 알려준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수없다. 70년대말까지 2백억달러내외의 외채가 요몇년사이에 2배가 늘어나 갓난애가 태어나면서 1천달러 이상의 빚을 지게되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우리 아이들의 씀씀이는 부모들의 장단에 맞춰·점차 풍요해지기만 하고, 고급상가일수록 흥청거리며, 국민들의 세금이 불요불급한 행사에 투입되고 있다. 경기가 하강하고 있다는 신문 한귀퉁이의 경고는 벌써 몇달간 계속되고 있는데도 힘의 절제, 말의 절제도 범행되어야 한다. 힘의 무절제가 최근 우리사회에서 자주 문제되는 각종 폭력유발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진단한다면 잘못일까. 국가가 자기권력을, 정부가 관권,행정력을 절제할수 있을때 자발적인 국민의 에너지가 형성될것이오, 그 결집된 국민적 에너지가 사실은 난국타개의 열쇠가 될것임은 역사에서 배운바와 같다.
우리는 그동안 말의 인플레이션시대를 살아왔고, 그만큼 말을 무절제하게 사용해왔었다.
말을 무절제하게 사용해온 결과 말의 순수성이 파괴되고 황폐하게 되었으며, 말을 통해서형성되어지는 사상과 인격조차 거칠어지게 되었다. 또 선거때마다 공약을 남발하였기 때문에 그동안 지도자들에 대한 이미지가 흐려진 것이 사실이라면 이번 선거에는 .부디 말을 절제하여, 「공약의 남발」이 과거 「구시대 정치인」들의 상투적인 수법이었음을 입증시켜주어야 할 것이다.
힘과 말이 절제되고 무엇보다 앞으로의 살림살이가 절제되어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뤼지는 살림살이에서 먼저 내핍과 절제의 방향이 보여져야한다. 과대포장의 흔적이 있다면,국가의 방만한 기구와 용관들이 축소되어져야 하고 전시위주의 .예산은 지양되어야한다. 아무리 외화내빈의 속사정이 드러났다 할지라도 국민적합의만 성숙되면 어떠한 난국도 타개할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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