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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투자의 양보다 질이 더 문제|기업가의 심리적 위축이 「체감경기」악화|진임<경제기획원 차관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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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기의 신장속도가 하반기들어서 둔화된 것이 사실이다. 해외건설·해운·합판·조선업등 일부 주요 업종들에 구조적인 어려움이 계속되는데다 최근들어 수출신장세가 늦춰지고 건축활동등이 눈에띄게 위축세를 나타냈다. 경기선행지수도 작년 9월이후계속 상승세를 계속해오던것이 처음으로 내림세로 꺾였다.
이같은 여건속에서 소위 말하는 지수경기와 체감경기가 새삼 논의의 대상이 되기시작했고 심지어는 불황으로 의용진인을 우려하는 이야기까지 나오고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경기의 수준이나 향방을 논함에있어 우선 전제되어야할 것은 어떤 시각에서보느냐와 어떤 자(척도)로 재느냐는 점이다.
어떤방법을 통해서든 개별적인 관찰이 충분히 쌓여져 전체경제흐름을 조명해 줄수 있다면야 문제될게 없겠지만 어쨌든 전반적인 생산활동·판매·기업수지·고용사정등을 포괄적으로 담을수 있어야할것이다.
금년 상반기의 경기가 좋았다는 점에서는 아무도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수출이 기대이상으로 급속히 늘어났고 내수쪽에서도 활기를 띠었다. 그결과 1·4분기의 성장률은 9.7%에달했고 특히 내구성소비재를 중심으로 과열의 조짐까지 보였다. 컬러TV출하액은 작년같은기간에 비해 80%, 냉장고는 58%씩이나 늘어났다. 『경기가 좋은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이러다간 언제 뒤집어질지 몰라 겁이난다』는 어느 기업가의 말이 당시 경기분위기를 상징적으로 설명해주는 이야기였다.
분명한것은 이대로 가다간 국제수지나 물가안정에 심각한 주름살을 미칠것이라는 점이었다. 경기의 이같은 급상승이 기엄쪽에서도 좋을리 없었다. 여건변화에 따른 합리적인 대응책마련이 어려울뿐만 아니라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나 능률제고라는 측면에서도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정부는 지난4월이후부터 경기진정책을 쓰기시작했고 그결과가 3·4분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경기둔화의 양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경기가 일부에서 지적하고있는것처렴 「급속냉각」또는 「침체상태」로까지빠져든 것이라고는 볼수없다.
성장템포가 늦춰졌다고 하지만 l·4분기에 33%에 달했던 내구성소비재가 3·4분기에 와서 15%증가로, 기계류출하액은 45%에서 32%로 증가율이 둔화되는 정도였다. 요컨대 성장속도가 상반기에 비해 둔화되었다는 이야기이지 경기수준자체는 오히려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다고 봐야할것이다.
더우기 4·4분기에 들어오면서 잠시 내림세로 꺾였던 수출이 활기를 되찾고있다. 가장 걱정하고있는 국제수지문제도 비록 통관기준이긴 하지만 10월중에 3억달러가량의 흑자를 기록해 한숨 돌리게됐다.
연말까지 풀릴 추곡수매지금 역시 작년보다 1천5백억원 규모가 늘어나 내수에보탬이 될것으로 보여 수해를 겪었던 지난 9월을 고비로꺾였던 경기는 다시 회복세로 돌아설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점을 종합해보면 올해경제의 모습은 성장률 7.5%내외, 소비자물가 2∼3%, 경상수지적자 14억달러이하등으로 축약될수 있다.
그러나 최근 경기논의의 초점은 내년도 경기가 어찌될것인가에 맞춰지고 있는듯하다. 물론 내년 경기를 지금부터 장담하기에는 많은 불확실성을 안고있다.
어쨌든 대외여건을 일견해보면 그동안 짐이되어오던 국제금리가 12%선으로 안정세를 되찾는등 일단 특별한 변수가 없는한 내년에도 7∼8%선의 성장이 무난할 것으로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를중심으로 지금의 체감경기수준뿐만 아니라 내년들어서는 경기가 더 나빠질것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꼭 짚고넘어가야할점은 일반적으로 느끼는 체감경기라는 것은 심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특히 이같은 심리적요인은 지금 당장의 경기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다가올 장래의 경기향방이 어찌될까하는 일종의 불안감으로 연결되기 쉽다는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같은 심리적 요인에 의해 체감경기를 더욱 나쁘게느끼게 됐다면 그 첫번째 원인은 지금의 경기를 상대적으로 급상승했던 상반기에 비교해서 더 못하다고 느끼고 있는것이고, 바로 이런 심리적인 불안감이 내년경기까지 어둡게 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있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대기업들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이 최근 가열되면서 기업쪽에서 느끼는 위축감 또한 심리적요인으로 한몫을 했으며 세번째로는 투자분위기가 종전처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나 보장없이 기업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져야하는 쪽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들의 최근 투자동향을봐도 크게 우려할바는 아니라고 본다. 일부 기업측에서는 금년도 투자실적이 계획치의 절반수준 밖에 안된다고주장하고 있지만 작년보다 얼마나 계획치를 늘려잡았는지느 밝히지 않고 무턱대고 줄어들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다. 선장의 핵심원 동력인 제조업부문의 투자는 금년들어서 평균 25∼30%가량 이루어졌고 이정도면 걱정한 수준이다.
문제는 오히려 투자의 양보다는 질에 있다. 자금조달능력에 대한 냉정한 검토나 수익성의 분석을 소홀히 한 채 일을 벌여놓고 보자는 식의 투자는 오히려 바람직하지 못하다. 상반기에 왕성했던 투자마인드가 하반기들어서 다소 냉각된것도 이같은 면에서 기업스스로의 제동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돈을 풀어야한다」든가 「건축분야의 부양책강구」또는 「기업투자촉진을위한 지원책마련」등을 지적하고 있으나 한마디로 말해 이같은부양책을 쓸 시기가 아니라고 본다. 특히 경기위축이 설령 크게 걱정된다해도 부동산투기를 부추겨가면서 까지부양책을 쓰는 일 같은 것은 절대 있어선 안된다. 자금공급 역시 당장은 어렵더라도 그제수지방어와 물가안정이라는 전체경제운용의 테두리에서볼때 지금수준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밖에 없다.
전체유동성을 기준하면 아직도 20%정도의 돈이 더 풀리고있는 셈이다.
경제운용을 해나가는 주체는 사람이고 앞으로의 경기를 예측하는데도 사람의 심리가 결정적인 역할을한다. 지나친 낙관도 금물이지만 지나친 비관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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