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6)안동「헛 제사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기제 날, 일반가정에서만 음복하던 제사 밥이 이제 거리의 대중 식으로 등장했다. 제사에 대한 의식이 차차 사라져 가고 있는 현대에 마치 향수와도 같이 등장한 제사 밥은 「헛 제사밥」 또는「허제밥」이란 이름으로 경북 안동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또 「허제밥」 은 한국의 고유 음식들과 달리 맵거나 짜지 않아 외국 관광객도 거부감 없이 즐기고 간다.
제사에 등장하는 각종 나물과 따끈한 밥, 탕국물과 산적이 주메뉴인 「허제밥」은 예부터 안동이나 진주 등지에서 밤참으로 곧잘 애용돼 온 것으로, 음식점 메뉴로 등장한 것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지방에 따라 제사 음식들도 조금씩 다르지만 안동지방의 제사음식은 그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독특한 일면이 있다.
상어와 홍어로 만드는 산적은 약간 썩인 듯한 톡 쏘는 맛이 내륙의 풋풋한 인정을 일깨워 준다. 원래 비린 생선이라 하여 제사에는 잘 쓰지 않는 간 고등어도 「허제밥」 의 짭짤한 밥반찬으로 빠지지 않는다.
안동댐 곁에 마련된 성곡동의 안동 민속촌에서 「안동음식의 집」 을 경영하고 있는 조계항씨 (59) 는 시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한식 식당을 30년 동안 운영해온 「안동의 음식솜씨」 가운데 한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시내에서 이곳 민속촌으로 옮긴 것은 l년 전. 그 동안 해오던 안동 건진 국수나 독특한 안동 갈비탕 등은 이웃식당에 맡기고 조씨는 「허제밥」만 전문으로 맡았다.
예부터 유림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양반 의식이 강한 안동이기 때문에「허제밥」이란 식당메뉴가 자연스럽게 탄생할 수 있었다고 조씨는 말한다.
「허제밥」 에 나오는 나물은 고사리·도라지·콩나물·박나물·숙주·배추·시금치·무나물 등으로 일종의 비빔밥에 속한다. 산적으로는 상어·홍어·두부·고등어·쇠고기·오징어를 쓴다. 두부를 제외한 생선이나 육류는 약간 신선미가 부족하나 이 역시 내륙요리의 특징으로 꼽히는 것이다.
탕국물은 음식재료로 썼던 식품을 모두 넣어 끓이는 잡탕국으로 무우를 네모나게 썰어 넣어 시원한 맛을 살려준다.
디저트용으로 나오는 안동식혜는 안동을 중심으로 한 몇 개 군에서만 애용하는 음식으로 이 지방의 해장국으로도 통한다.
찹쌀이나 차조를 써서 만드는 식혜는 감주의 일종인데 무우나 생강·고춧가루를 함께 넣어 삭힌 음식이다.
만드는 법도 독특하다.
먼저 엿기름가루를 따뜻한 물에 풀어 3∼4시간 두어 누르스름한 물이 우러나게 한다. 찹쌀로 지은 고두밥에 아주 잘게 네모로 선 무를 넣고 생강·고춧가루를 섞은 후 우려낸 엿기름물을 붓고 더운 방에 하룻밤 잘 삭히면 된다.
차조의 경우 무우를 채로 썰어 넣는데, 차조가 지나치게 딱딱하므로 무우에서 우러나는 물이 많도록 하기 위해서다.
안동식혜는 맵싸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특징인데, 식혜 한 공기만 마시면 아무리 심한 숙취라도 금방 깨끗하게 깨어날 수 있을 정도로 해장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이 지방사람들의 말이다. <김등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