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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온라인] 서울대 도서관 폭행사건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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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는 누구나 공인?'

도서관에서 벌어진 한 대학생의 폭행사건이 온라인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오프라인에서는 이미 지난 4일 가해 학생이 폭력혐의로 불구속 입건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네티즌들에 의해 가해 학생과 주변인들의 개인 정보가 낱낱이 공개되면서 역으로 '사이버 린치'의 피해자가 되는 등 상당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달 30일 오후 6시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공부 중이던 A군은 맞은편에서 잡담을 나누던 B군 일행에게 조용히 해줄 것을 요구했다가 B군에게 되레 폭행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인터넷에 이 사건이 공개된 것은 발생 후 불과 세 시간 만이었다. 황당한 현장을 목격한 다른 학생들이 오후 9시쯤 서울대의 정보 포털사이트인 스누라이프(www.snulife.com)에 글을 올렸다. 곧 이어 피해 학생이 글을 올려 도움을 청했다. B군 일행이 남기고 간 책에 적힌 이름을 토대로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터넷은 가해자를 찾기 위한 '도움방' 역할에 그쳤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다음날 B군의 이름과 나이 등 개인 정보가 차례로 밝혀지기 무섭게 네티즌들은 각종 회원 검색 기능을 활용, B군의 개인홈페이지를 찾아냈다. "폭력적이고 제멋대로라 평소에도 문제가 많다" "삼수생이라 나이도 많고 힘 좀 쓴다"는 등의 인신공격성 비난이 쏟아졌다. B군은 홈페이지를 폐쇄했고, B군이 속한 단과대 홈페이지도 네티즌들의 비난 글이 몰려 여러 차례 다운됐다.

네티즌들이 관련 게시물을 이리저리 퍼 나르면서 B군의 유명세는 삽시간에 학교 울타리를 넘어섰다. 사건 발생 사흘 만에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B군의 실명이 인기 검색어 수위에 올랐고, 여자 친구의 이름까지 추천 검색어로 뜰 정도였다. 네티즌들은 B군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따 '○사마'라는 별명을 붙이고, 관련 기사는 주기적으로 방문해 비난 댓글을 붙이는 이른바 '성지순례' 코스에 편입시켰다. 한 포털의 관련 뉴스에는 이런 댓글이 지금까지 무려 4만5000개에 육박하고 있다. 지금까지 '성지순례'의 대상은 주로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이었다. 이 와중에 B군과 동행했던 여학생의 실명.소속학과.e-메일 주소는 물론이고 함께 찍은 사진까지 무차별적으로 유포됐다. B군은 피해 학생과 합의한 뒤 학내 게시판에 사과 글을 올렸지만 '펌질'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부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네티즌은 "사람을 때린 것이나 인터넷에 사진까지 유포하는 것이나 폭력이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잘못을 했으니 책임은 져야겠지만, 인터넷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마녀사냥식의 무작정 비판과 사회적 매장은 지나치다"(DerKleineVampir)며 '인터넷 징벌'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폭행 사건의 피해자인 A군은 기자와 통화에서 "사건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면서도 "가해학생의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뒤늦었지만 포털사이트들도 인권침해를 고려해 B군의 실명을 검색어에서 삭제했다고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김재규 사이버 수사대장은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에 의한 명예훼손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가중처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급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B군은 지난 6일 휴학계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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