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환자가 행적 숨기면 벌금 200만원 … 의심 신고 안 한 의료진도 똑같은 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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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환자 수가 두 자릿수로 늘어난 원인은 초기 역학조사의 실패에 있었다. 특히 환자가 자신의 행적을 제대로 밝히지 않거나 숨기면 방역망에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최초 환자(68)는 지난 20일 확진 판정을 받은 직후 역학조사관이 중동에서 방문한 나라를 캐묻자 “바레인과 카타르를 경유해 귀국했다”고만 했다. 메르스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사우디아라비아에 들른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바레인에선 메르스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고, 카타르는 3월 이후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은 나라다. 이 환자가 메르스 창궐 지역에 다녀온 사실을 몰랐던 당국은 그의 바이러스 전파력을 파악하지 못했다.

최초 환자와 같은 병실에 입원했다가 감염된 세 번째 환자(76)와 그의 딸인 네 번째 환자(44)도 중국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열 번째 환자(44·세 번째 환자의 아들이자 네 번째 환자의 남동생)가 병실에 다녀간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그 바람에 열 번째 환자는 격리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중국 출장을 떠나기까지 했다.

 감염병이 발발한 경우 환자 등 관계자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역학조사에 응해야 한다.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은 역학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은 감염자·의심자에 대해 200만원의 벌금형을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로 볼 때 최초 환자와, 세 번째·네 번째 환자는 이 법에 저촉된다.

 신고 의무를 저버린 의료진도 문제였다. 모든 의료기관 관계자는 감염병 의심 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당국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이를 어기면 2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열 번째 환자가 자신의 증세를 밝히며 통화한 보건소 직원은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했을 뿐 통화 내용을 신고하지 않았고, 이 환자의 고열 증세와 메르스 환자와의 접촉 이력을 알게 된 응급실 의사는 이틀 뒤에야 신고했다. 환자는 중국으로 출국한 뒤였다.

 정부는 접촉자나 환자가 역학조사에 응하지 않거나 의료인이 신고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 법적인 책임을 물을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권준욱 공공보건정책관은 “대다수 국민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역학조사 불응자나 신고 의무를 지키지 않는 의료진에 대해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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