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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경제"궤도수정"|「현대화」위한 안간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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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공경제의 구조를 크게바꾼 등소평의 경제체제 개혁은 문화혁명과 전혀 다른 또하나의 「혁명」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중공경제의 75%정도가 궁극적으로 국가통제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개혁조치는 「생산을 늘릴 수만 있다면 어떤 방식, 어떤 처방이라도 좋다」「시간은 돈이요, 능률은 생명이다」는 등소평의 실용경제철학을 집대성한 것이다.
개혁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주요정책들은 등소평·호요방체제의 근대화방안을 이론화한것이며 최근 1∼2년간 중앙정부가 부분적으로 실시, 신중한 여과과정을 거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35년만의 변신>
그러나 이같은 조치는 중공이 정권수립이후 35년만에 취한 가장 과감하고 대폭적인 것이며 과감한 자본주의방식의 도입이라는 점에서 파격적인 것이다.
중공의 실용주의자들이 강력히 내세우고 있는 4개 현대화계획, 즉 농업·공업·국방·과학기술의 현대화를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내놓은 개혁조치의 핵은 내년 1월1일부터 가격체계에 시장원리를 도입한다는데 있다.
중공의 경공업제품과 식료품은 현재 원가이하의 낮은가격수준에서 통제를 받고 있다. 이때문에 항상 상품공급이 달려 품귀소동을 빚기 일쑤이고 도시와 농촌간의 물자교류나 원활한 기술발전을 기대할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 조치는 좋은 물건은 비싼 값으로도 많이 팔도록함으로써 수요와 공급을 맞추고 상품유통도 원활히 하자는 것이다.
중공경제의 암적 존재인 불합리한 가격체계에 시장원리를 도입, 메스를 가하겠다는 중공당중앙위원회의 결정은 사실상 모택동이 내세워 왔던「인류의 평등주의」를 가차없이 추방하고 있다.
이뿐만아니라 관료주의적이고 경직화된 계획경제를 한층 탄력화시켜 당과 정부 및 상부기관의 통제를 완화하며 기업경영의 자유재량권을 더욱 확대하는데 중점을 두고있다. 당과 정부의 명령체계하에 있는 기업경영에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자본주의경제에서 볼수 있는 시장 메커니즘을 갖추도록 하고있다.
말하자면 다같이 못사는 평등주의를 타파하고 약육강식의 원리가 적용되는 경쟁체제로 진입,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좀더 잘 살수 있도록 서두르고 있다.
「돈을 더 벌려거든 더 열심히 일해라」「부지런한 사람에게는 상을, 게으른 사람에게는 벌을 주라」는 현 중공지도계층의 정책은 농초경제를 어느정도 활성화시키는데 성공했다. 농촌경제의 성과를 도시경제로 옮겨 8천만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는 1백만개의 도시기업에 활력을 증강시키도록 촉구하고 있다.

<인플레도 각오>
경영책임자는 종업원의 직무수행 능력에 따라 임금을 차등지급하고 고용이나 해고에 관한 재량권및 수익을 늘리기 위한 자율경영권을 부여받는다고 천명했다.
손해나지 않는 장사를 하기위해 각종 원자재와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나 농부들은 현재 통제가격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판매가격을 책정하게될 것이며 (일부생필품제외) 이에따라 가격상승도 불가피하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팔아왔던 농산물도 중공당국의 재정적자 증대로 이제 구매가 어렵다.
등소평은 『중앙에 돈이 없으니 지구별로 혈로를 찾으라』고 했다.
중앙의 통제가 전면 폐지되는 가격체계의 개혁은 중공 수천만 가구의 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것임에 틀림없다. 등소평체제가 예상되는 인플레를 각오하고 개혁을 서두르는 것은 정권을 장악한 이래 다져진 그의 자신감의 표현이다.
등소평은 82년 12차전당대회에서 20년내에 공업총생산을 이른바 「번양번」(두번을 배로 뛴다. 즉 4배로 뛰게한다)으로 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현대화를 서둘렀다. 서기 2000년까지 공업총생산을 4배로 증가시키겠다는 그의 포부는 위대한업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고 싶다는 그의 소망에서 나온것이다.
이를위해 등소평은 그의 최대목표인4개현대화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첫째로 인사개혁을 단행, 그동안 사인방과 그의 추종자를 제거하고 등자신에게 충성하는 후계자들에게 권력을 안배하는데 성공했다.
둘째로 현대화계획의 수요에 응할수 있는 인재양성을 위해 2만여명의 유학생들을 해외에 파견했으며 간부들을 청년들로 교체,「사상적이고도 전문적」인 인물로 훈련시키고 있다.
세째로 유고슬라비아 및 루마니아의 경험을 흡수하여 농촌에서의 인민공사제도를 포기했으며 경제적으로 책임제를 실시함으로써 물질을 중요시하는 장려책을 내놓아 생산을 증가시켰다. 경제개혁혜택을 입은 일부 농민들은 디스코교습소에 나가거나 쌍꺼풀수술을 하기도했다.
이같은 생산책임제는 농업에서부터 상업·공업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이번에는 당중앙위원회를 통해 경제체제개혁에 관한 결정을 채택, 전통적인 사회주의 모델인 소련형 통제경제체제로부터의 전환을 국내외에 공포했다. 중공형 개방경제를 향해 역사적인 제일보를 내디딘 것이다.
이번 경제개혁에서 중공은 중앙의 가격통제를 철폐하고 기업경영자의 재량권을 대폭확대했지만 기업 자체는 전민및 집단소유로 남겨둠으로써 근본적으로 사회주의의 틀을 허물지는 않았다. 등체제는 경제개혁이 자본주의화한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더욱 발전시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혁세력 반발>
등소평체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도 적지않다. 그동안 당기구 간소화를 추진했지만 그 대상기관은 제한되어 있었으며 감원된 인원은 또다른 기관에 심어져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농촌경제개혁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능률급 임금제도나 경영책임자의 해고및 임용재량권에 대한 거센 반발이 일부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났으며 이같은 현상은 내년부터 전면실시되는 가격통제 해제등으로 사회혼란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적지않다. 이미 몇개 도시에서는 생활필수품의 가격폭등을 예상한 시민들이 은행예금을 찾아 물건사재기를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뿐만아니라 실용주의 경제에 대한 문혁세력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중공이 계속 현대화계획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경제및 과학기술의 전문지식을 갖춘 인물들이 상당수 양성되어야한다. 새로운 중공지도자층은 지난 날과는 달리, 추상적인 끙산주의교조를 중요시 하지않고 비교적 실제문제를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양성되고 있는 청년 지식인들이 현대화의 선두에 서기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인구 10억인 중공의 1인당국민소득(82년)은 3백달러로 인구 1천8백만명인 대만의 2천5백37달러에 비해 8분의1에도 못미치고있다.
오는 97년이후 홍콩에 그들의 오성홍기를 나부끼게 하려는 중공은, 그들이 주장하는 「대만통일」을 방해하는 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의해서라도 개방경제체제를 더욱 확대하고 선진국의 기술과 자본을 대폭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철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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