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째 환자, 8일 동안 회사·병원 오가며 수백명 접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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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출장 간 40대 남성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감염자로 밝혀지면서 추가 감염(3차 감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남성이 접촉한 직장동료, 같은 항공기를 탔던 승객 등 수백 명으로 위험 범위가 커질 수 있다. 여섯 번째 환자도 아직 정확한 감염 경로가 드러나지 않아 불안을 키운다. 이 때문에 여섯 번째 환자가 감염 후 옮겨 간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이 집중치료실을 폐쇄했다는 괴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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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기 감염 가능성 있나=44세인 여덟 번째 환자는 지난 26일 홍콩을 경유해 중국 광둥성에 들어갔다. 비행기를 두 편 이용했다. 그의 상하좌우 근접거리에 있던 승객이 최대 56명, 승무원은 3명이다. 출입국 과정에서 접촉한 공항 직원이 몇 명인지는 알 수 없다. 학계에선 항공기 내 감염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2012년 요르단에서 메르스가 처음 발병한 이후 항공기 감염자가 보고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8명의 환자가 비행기를 이용해 영국·그리스·이탈리아·네덜란드 등에 입국했지만 기내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오명돈(감염내과) 교수는 “아직까지 기내에서 전파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가까운 좌석은 물론 승무원도 감염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만약 그 사이에 바이러스 전파력이 올라갔다면 앞뒤 두 열 정도에 있던 탑승객은 안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여덟 번째 환자는 그동안 당국의 관리를 전혀 받지 않았다. 19일 발열 증세를 보인 뒤 27일 중국 병원에 격리될 때까지 8일 동안 회사·병원을 다녔고 가족과 생활했다. 방역 당국의 초기 역학조사가 부실한 탓이다. 그가 세 번째 환자인 아버지(76)를 문병했을 때 같은 병실에 입원 중이던 첫 번째 환자(68)에게 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 번째 환자는 21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정상대로라면 당시 병실에 그의 아들이 같이 있었던 사실을 밝혀내 최소한 자가(自家)격리 조치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방역 당국은 아버지와 네 번째 환자인 누나(46)에게서 이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은 “초기 역학조사 과정에서 의심자(여덟 번째 환자를 지칭)를 발견하지 못한 게 원인”이라며 “세 번째 환자와 그의 딸이 다른 가족이 병실에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역학조사의 기본을 놓친 것이다.

 이후 과정에서도 잇따라 구멍이 뚫렸다. 여덟 번째 환자는 19일 열이 났다. 그 이후 스스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21일 아버지가 확진 판정을 받자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증상과 상황을 설명했다. 이때 보건소 담당자는 “보건소는 어려우니 대학병원에 가서 받는 게 어떻겠느냐”고 답했을 뿐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날 열이 37.7도까지 오르자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때도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25일 열이 더 오르자 또 응급실을 찾았다. 그러면서 “내일 중국 출장을 떠난다”고 말했다. 당시 응급실 의사는 그에게 “출장을 가지 말라”고 말렸을 뿐 당국에 메르스 감염 의심자를 진료했다는 걸 알리지 않았다.

 결국 다음날인 26일 그는 중국으로 떠났고 응급실 의사는 27일 이 사실을 신고했다. 모든 의료기관 관계자는 감염병 의심 환자를 발견한 즉시 당국에 신고하도록 돼 있는 규정을 무시한 것이다.

 ◆감염경로 몰라=28일 여섯 번째 감염자로 확진 판정을 받은 71세의 남성도 어떻게 감염됐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이 환자는 첫 번째 감염자의 병실과는 10m나 떨어진 1인실에 있었다. 밀접 접촉자가 아닌 만큼 격리 대상자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질병본부 양병국 본부장은 “여섯 번째 환자가 지난 15일 입원에 앞서 외래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첫 환자와 접촉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질병본부는 이를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정확한 근거가 빈약해서다. 방역 당국의 다른 관계자는 “외래 진료 과정에서 접촉한 흔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이런 애매한 사정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한 환자가 거쳤던 모 대학병원의 집중치료실이 폐쇄됐으니 그 병원에 가지 말라”는 글이 떠돌고 있다. 하지만 이 병원 관계자는 “71세 남성 환자가 다녀간 건 사실이지만 집중치료실을 폐쇄하지 않았고 그를 진료한 6명의 간호사와 의사 2명은 자택 격리 조치됐다”고 말했다. 71세 환자가 직전에 들른 병원 관계자도 마찬가지로 집에 격리된 상태다. 그런데도 이런 괴소문이 꼬리를 물고 떠돌고 있다. 당국의 허술한 대응이 불안감을 키웠다.

이에스더·정종훈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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