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술 취한 어선'에 뚫린 최전방 경계태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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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어선 한 척이 동해 북방한계선을 거쳐 북한으로 넘어가는 것을 군이 저지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어민이 몬 3.9t짜리 소형 어선이 유유히 북쪽으로 올라가는 데도 막지 못한 것이다. 불과 6개월 전 중부전선의 3중 철책이 뚫린 데 이어 이번엔 해상의 최전선마저 구멍이 난 것이다.

군 당국은 경고사격 등 나름대로 대처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해명했다. 어로한계선을 넘기 전까지는 월북할 의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근 어장에서 선단을 통제하던 해양경찰도 선단의 철수로 귀항했다는 점도 들고 있다.

그러나 대낮에 '술 취한 어선'이 북상하는 것을 빤히 보면서 이를 막지 못한 것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이 선박을 처음 발견한 육군 해안부대가 해군이나 해경에 통보를 지체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군 당국이 발견 지점이나 시간대별 조치내용을 놓고 번복을 몇 차례 한 것도 석연치 않다. 자이툰 부대 오발 사고 묵살 등으로 가뜩이나 불신을 받고 있는 군 당국이 이번에도 뭔가 숨기려 한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만일 이 어선에 귀환 간첩이 타고 있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해당 해역을 지키고 있던 해군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남쪽에서 올라가는 것도 이렇게 뻥뻥 뚫려 있는데 북에서 내려오는 것은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국민 입장에선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번만큼은 휴전선 철책 절단사건 때처럼 눈 가리고 아웅식 대응을 해서는 안 된다. 군 당국은 진상을 엄밀하게 조사해 지휘책임을 물을 것이 있으면 철저히 물어야 한다. 경계 태세 및 작전 체계에는 취약점이 없었는지를 면밀히 파악,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한과의 교류협력과 안보의 확립은 별개의 차원이다. 안보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남북대화를 해도 국민이 불안하지 않은 것이다. 군까지 정치.사회 분위기에 휘말려 느슨해져 있다면 정말 큰일이다. 이런 불상사들이 자꾸 발생하니 군에 불신이 생기는 것이다. 복무 자세를 가다듬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