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연구비로 2억대 주식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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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경북대 A교수는 2009년 4월~2014년 5월 20개 국책연구과제를 수행했다. 교육부 등은 국가연구개발사업비에서 연구원 인건비로 A교수에게 3억800만원을 지원했다. A교수는 연구원들의 인건비 통장을 직접 관리하며 이 중 2억5000만원을 주식 투자에 사용했다. A교수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2014년 10월 회사를 창업했다. A교수는 “주식에 자신이 있어 벤처사업 출자금을 모으기 위해 투자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등 12개 국립대를 대상으로 한 ‘국가 연구개발(R&D) 참여연구원 관리실태’ 감사에서 다수의 국립대 교수가 국가연구개발사업비를 사적으로 쓰다가 적발됐다.

 교수들은 주로 ‘허위 연구원’을 등록하는 수법으로 연구비를 개인적으로 사용해 왔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대학원생을 연구원으로 등록한 뒤 인건비를 챙기곤 했다.

 전북대 B교수는 2010~2014년 9월 연구용역 23건을 수행하며 연구원 48명의 연구비 통장을 직접 관리했다. 이 중 11명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유령 연구원’이었다. B교수는 유령 연구원에게 지급된 인건비 1억2000만원 등 총 5억8000만원을 용도가 불분명하게 사용했다. 연구비로 자녀의 ‘용돈’을 주던 부부 교수도 적발됐다. 부경대 D교수와 E교수는 군에서 장교로 근무하고 있는 아들을 각각 연구원으로 등록했다. 부부가 2009~2011년 아들에게 부당하게 연구비로 준 돈은 2300만원이었다. 감사원은 A~E교에게 파면 등의 징계를 내릴 것을 교육부에 요청했다.

 8억원 가까운 연구비가 친척에게 흘러간 사례도 있었다. 서울대 F교수는 사촌동생에게 연구원 선발과 관리를 맡겼다. F교수는 정부가 지급한 인건비를 무시하고 자신이 임의로 지급액(석사 월 35만원, 박사 월 50만원)을 정한 뒤 초과하는 돈은 사촌동생의 통장으로 입금시켰다. 이렇게 입금한 돈이 9억8000만원이었다. F교수의 사촌동생은 이 중 7억2000만원을 어머니 등 가족에게 나눠 주거나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경비로 사용했다. F교수는 “사촌동생이 개인적으로 사용한 돈의 용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으나 감사원은 서울대에 정직을 요구했다.

 감사원은 교수들이 연구비를 사적으로 쓴 것은 정부의 사후 검증 시스템이 허술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연구원들이 실제 연구에 참여하는지 학적 데이터베이스(DB) 등을 통해 점검하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연구비를 부당하게 사용한 교수 등 19명에 대해 파면·해임·정직 등의 징계를 요청하고 이 중 13명에 대해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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