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채 인기가 왜 이래 … 구로다의 속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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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총재

일본은행(BOJ)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에게 고민이 생겼다. 일본 국채시장에 이상한 조짐이 나타나서다. 블룸버그 통신은 “국채 도매(발행)시장에서 국채를 사겠다는 입찰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26일 전했다.

 이달 12일 일본 재무부가 10년 만기 국채를 발행했다. 입찰 규모는 채권 발행량보다 2.24배 많았다. 언뜻 보면 여전히 수요가 탄탄해 보인다. 하지만 2009년 이후 가장 낮다. 지난해 8월엔 4.28배를 웃돌았다. 일본 국채 10년물만 수요가 줄어든 게 아니다. 만기 2년·20년·40년짜리의 입찰률도 떨어졌다. 블룸버그는 “40년 입찰률은 2007년 이후 가장 낮았다”고 보도했다.

 심상찮은 조짐이다. 두 달 전인 올 3월 만해도 일본 국채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일본은행의 양적 완화(QE) 때문이었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일본 국채는 자국 내 시중은행, 채권형 펀드, 연기금 등이 거의 독식했다. 해외 투자자들에게 팔려고 애쓸 필요도 없는 자산이었다.

 이런 일본 국채의 입찰 수요가 눈에 띄게 줄었다. 국채 발행시장의 주요 고객은 시중은행들이다. 구로다 총재의 QE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금융회사들이다. 26일 현재 일본은행이 사들이는 국채 등은 무려 12조 엔(약 108조원)에 이른다. 덕분에 시중은행은 일본 국채를 싸게 낙찰받아 시장 가격으로 일본은행에 팔아 돈을 벌 수 있었다. 시중은행은 사실상 무위험 돈놀이를 즐긴 셈이다.

 그런데도 시중은행은 국채 입찰을 줄이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날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QE)이 입찰 수요 감소를 상쇄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구로다 총재의 QE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톰슨로이터는 “글로벌 국채 시장의 불안 탓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고 전했다. 미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탓이다. 일본 니코증권의 시마즈 히코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블룸버그와 전화통화에서 “올 하반기에 일본 국채를 포함해 글로벌 채권시장이 충격받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글로벌 국채시장 불안이 예상돼 국채 값이 미리 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 바람에 최근 한 달 새 미국·독일 국채 값이 떨어졌다(시중금리 상승). 일본 국채도 예외는 아니다. 10년 만기 수익률이 올 1월엔 연 0.2% 선이었지만 26일 현재 0.4% 정도다. 금리의 절대 수준은 여전히 낮지만, 단 5개월 새에 두 배 정도 높아졌다(가격 하락). 금리 상승 속도가 너무 빠르다. 유럽중앙은행 통화정책위원인 보노에 코오레마저 “국채 금리 상승(가격 하락) 속도가 걱정거리”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 바람에 QE가 낳은 채권 버블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CNN머니는 최근 전문가의 말을 빌려 “요즘 국채 값 하락이 지난해 중순 이후 유가 폭락과 같은 채권 가격 폭락을 알리는 전주곡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요즘 들어 회생 기미를 보이는 일본 경제엔 좋지 않은 소식이다.

 올 1분기 일본 경제는 2.4%(연율) 성장했다. 디플레이션 완화 기대도 한껏 커졌다. 호사다마(好事多魔)인가. 일본 국채 금리가 사뭇 가파르게 오른다. 그동안 일본 경제는 저금리와 풍부한 자금을 디딤돌 삼아 되살아나는 듯했다. 채권 거품 붕괴는 그 디딤돌을 치우는 꼴이다. 그 여파로 요즘 구로다 총재가 하반기에 QE를 더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그러면 엔저는 더욱 심해진다. 일본 제품과 경쟁하는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더 떨어질 수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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