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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가 있는 아침 ] - '6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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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수복(1953~) '6월' 전문

저녁이 되자 모든 길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추억 속에 훤히 불을 밝히고
유월의 저녁 감자꽃 속으로
길들은 몸을 풀었다
산 너머로, 아득한 양털구름이
뜨거워져 있을 무렵,
길들은 자꾸자꾸 노래를 불렀다
저물어가는 감자꽃 밭고랑
사이로 해는 몸이 달아올라
넘어지며 달아나고, 식은
노랫가락 속에 길들은
흠뻑 젖어 있었다



6월하고도 저녁이면, 이제 조금 안심해도 좋지 않을까. 벌써 이만큼이나 푸르렀으니! 잠깐 추억의 불을 밝힌다 한들 누가 틈을 엿보리! 허리띠 풀고 앉아, 한껏 달아올랐다가 달아나는 해를 여유 있게 바라볼 수도 있는 거다. 뜨겁게 달려온 사람들이여, 이만큼 살아오기도 힘겨웠잖은가! 오늘 저녁에는 '모든 길들이 노래를 부르는' 그 소리에 귀를 맡기고, 입이 흥얼거리는 대로 그냥 두어 보자.

박덕규<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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