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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리포트24] 보험금 노린 살인 … 2년 된 무덤까지 파헤쳐 농약 찾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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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1955년 3월 25일 설립됐다. 올해로 60주년. 그러나 ‘과학수사’라고 하면 미국 드라마(미드) CSI부터 떠올리는 게 요즘 대중이다. 길 그리섬 반장(드라마 ‘CSI-라스베이거스’ 등장인물)은 알아도 국과수 원장(서중석)이 누군지는 모른다. 지난달 28~30일 원주 본원과 이달 15, 18일 서울 신월동 국과수 서울사무소를 정밀 취재했다. 국과수는 27~29일 60주년 기념 과학수사박람회를 앞두고 있다.

 #부검실, 망자와 대화하다

 지난달 29일 오전 7시 국과수 원주 본원 부검실. 밤새 국과수에 도착한 변사체가 스테인리스 재질의 부검대 위에 놓여 있다. 법의관 1명, 법의조사관 2명, 조사관 1명으로 구성된 부검팀이 시신의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숨 막히는 침묵. “550㎎, 330㎎….” 법의관이 시신을 열고 꺼낸 장기의 무게를 가만히 읊조린다. 법의관은 죽은 자의 입을 대신한다. 망자의 시신 구석구석을 헤쳐 가며 사인(死因)에 근접해 간다.

 “오늘 부검하는 시신은 바다에 투신한 50대 남성입니다. 자살일 가능성이 큰데….”

 법의관과 조사관들은 망자와 대화를 나눈다. 망자가 남겨놓은 최후의 메시지를 읽어내기 위해 죽은 자의 살을 찢는다. 40분쯤 지났을까. 법의관이 조사관들을 부른다. “여기, 식도에 포말(거품)이 보이네요. 십이지장에서 모래도 검출됐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한 걸로 보입니다.”

 부검 후 시신 봉합까지는 보통 40분 정도 걸린다. 심하게 손상된 시신은 4~5시간이 소요된다. 전국적으로 사망 원인이 불분명한 변사자는 매년 3만8000구. 이 중 5000구가량이 국과수로 보내진다. 하지만 법의관은 전국에 23명뿐이다. 법의관 1명이 연간 230여 건의 부검을 소화해야 한다.

 그나마 인력 사정이 괜찮다는 서울사무소를 18일 찾았다. 법의관 7명이 일하고 있었다. 전국 5개 사무소 중 가장 많은 법의관이 있지만 늘 허덕인다. 닷새 전(13일)에는 서울 내곡동 예비군훈련장에서 총기난사로 사망한 예비군들의 시신이 들어왔다. 밤 10시부터 부검이 시작돼 총알 파편을 찾아냈다. 세월호 침몰 때는 대량재해 집단사망자 관리단을 꾸려 두 달 가까이 시신을 부검하기도 했다.

 최병하(47) 법의관의 설명이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하루 4건으로 부검을 엄격히 제한합니다. 대신 365일 부검 시스템을 도입해 휴일·주말에도 쉬지 않고 부검을 합니다. 고 신해철씨 부검은 수십 년간 부검해 온 최영식 소장님이 직접 했는데도 4시간 가까이 걸렸죠.”

 #범죄 흔적 찾으려 2년 된 시신 부검

 18일 오후 서울사무소 마약독성화학과에선 시신에서 채취한 장기와 혈액을 분석하느라 연구사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1차 부검을 한 시신이라도 사인을 파악하기 위해선 약물·독극물·알코올·조직검사가 필수다. 감정서를 들여다보던 백승경 과장이 잠시 고개를 들고 말한다.

 “매일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이지만 사건이 최종 해결됐을 땐 정말 짜릿합니다. 최근엔 2년 전에 매장한 시신에서 농약을 검출해낸 적이 있어요. 보험금을 노리고 전남편과 남편, 시어머니에게 농약을 먹여 살해한 ‘포천 농약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노모(44·주부)씨가 그렇게 붙잡혔죠. 저희가 무덤까지 파헤쳐 농약 성분인 패러쾃을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옆방인 법화학실에서는 유승진(39) 연구사가 현미경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유 연구사는 섬유나 페인트·플라스틱 등 범죄 현장에서 발견되는 미세증거물을 분석한다. 그는 교통사고 가해 차량의 바퀴를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유 연구사가 다급하게 손짓했다.

 “편광현미경으로 가해 차량의 바퀴에 묻은 손톱 반만 한 크기의 섬유를 찾아냈어요. 용의 차량 바퀴에 테이프를 붙여 채취한 증거물인데 피해자의 것과 완벽히 일치하네요.”

 #성범죄 용의자의 DNA를 찾아라

 유전자분석실 문을 열자 여성 속옷과 침대 시트, 체모, 손톱 등이 수두룩하게 보였다. 성폭행 현장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연구원들이 속옷 등에서 DNA를 채취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침이나 체액을 찾아내기 위해 특수안경을 쓰고 가변광원기를 켰다. 파란 불빛이 옷 위로 왔다갔다 하자 지나칠 뻔했던 흰 침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침이 있는 부분은 가위로 작게 오려내 DNA분석기로 들어간다. 성범죄증거분석실 최동호 실장이 말한다.

 “성범죄는 수백 개의 여성 DNA 중 단 한 개의 남성의 흔적을 찾는 작업입니다.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에요.”

 대다수 국과수 직원이 컴퓨터나 DNA분석기를 쳐다보고 있을 때 별관 1층 한편에서 자동차를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화재와 교통사고 원인 규명이 업무인 이공학과의 최창호(33) 연구사가 교통사고의 원인을 찾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 이곳은 자동차와 리프트가 있어 카센터를 연상케 한다.

 #연구원 239명, 한 해 33만 건 처리

 안행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국과수 연구원 239명이 처리한 부검·유전자 분석은 33만5000여 건이다. 연구원 1명당 연간 처리 건수가 2010년 1298건에서 2013년 1401건으로 늘었다. 하루 3건 이상 처리해야 하는 수준이다.

 예산도 턱없이 부족해 연구사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든다. 스마트폰으로 현장에서 실시간 문서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해 특허 출원했다. 미국 FBI에도 없는 코덱중심영상복구특허도 갖고 있다. 대형재해 신원 확인 시스템(MIM)을 개발해 동남아시아 국가에 3000만원 선에 보급하기도 했다. 국과수 서울사무소 최영식 소장이 취재진을 붙잡고 힘주어 말했다.

 “국과수는 사명감과 기술력으로 승부합니다. 미드 CSI 말고 우리 국과수에도 관심 많이 가져 주세요.”

글=채윤경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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