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거부하지 않았으니 같이 즐겼다고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그녀를 우리는 김다르크(한국판 잔다르크)라 불렀다. 용감한 그녀가 성추행을 당했다.

 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50대쯤 되는 남자가 그녀 앞에 서더니 차가 멈춘 틈을 타 두 손으로 가슴을 비틀어 움켜쥐고 나서 열린 문을 통해 달아나더란다. 그때 그녀가 내뱉은 말. 두 손으로 가슴을 싸안으며 ‘왜 그러세요’였단다. 사타구니를 차거나 따귀를 올려붙였을 그녀도 막상 당하니 수치스러움에 몸이 굳어버렸다는데. 가슴에 뱀이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기분도 기분이지만 대꾸 못 해준 게 더 억울해 하루 종일 울었단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대학 졸업반 때, 저녁에 부산에서 배를 타고 커다란 거실에서 잠자고 나면 다음날 새벽 제주에 도착하게 되어 있는 ‘카페리호’를 타고 친구들과 놀러 갔다. 여행 중이라 피곤했던지 오픈된 거실에서 정신없이 자다가 기분이 이상해 잠이 깼는데 어떤 남자가 내 몸을 더듬고 있었다. 그 순간 난 ‘얼음땡’. 어떻게 할까. 발로 차면서 소리를 질러? 주위사람들이 죄다 일어나 나를 볼 것이고, 그는 오해 말라며 지은 죄 없다 할 것이고. 입증할 방법도 없고, 잘못하면 나 혼자 미친 여자 될 것 같아 그 순간 내린 결론. 잠꼬대하는 척 몸을 뒤척여 그를 따돌리는 거였다. 수십 년이 지났어도 달빛에 비친 구역질나는 그의 뒷모습은 도무지 잊히질 않는다.

 조선시대 여자들은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은장도를 하나씩 지니고 다녔다. 품속에 칼이 있으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것까진 좋은데, ‘추행하면 널 찌를’ 용도가 아니라 ‘가까이 오면 내 자신을 죽일’ 용도였다는 것. 행한 자 아닌 당한 자가 왜 죽어야 하는지 원. 생각할수록 참 웃긴다.

 세월이 흘렀으니 성추행범에 대한 대응법이 좀 바뀌었을까. 엊그제, 이불을 들추고 엉덩이를 더듬은 성추행범에게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요즘 당한 그녀도 40년 전 당했던 나와 똑같이 ‘난처하고 민망한 상황이 벌어질까 봐 잠든 척 몸을 뒤척여 그 순간을 넘겼다’고 한다. 결국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의 무력행사를 한 게 아니니 더듬은 그 행위는 죄가 아니다’라는 판결이 나왔다. 거부하지 않았으니 강제 행위가 아니란다. 그럼 같이 즐겼다는 말? ‘그 정도는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할 정도가 아니다’라고?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당한 자만 억울하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 신구의 그 말을 인용해 그 판사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니들이 그 맘을 알아?’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