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미쳐야 본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 영화나 한 편 보려고 포스터를 살피다가 화들짝 놀란다. 무자비한 문구가 눈에 띄어서다. “미친놈만 살아남는다.” 뭐라고? 눈을 비비고 다시 읽는다. “희망 없는 세상 미친놈만 살아남는다.” 아, 그러니까 살아남으려면 미쳐야 한다? 미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도리가 없다? 혀를 차다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카드를 꺼낸다. 공상과학영화니까 그럴 수 있지. 제목조차 ‘미친 맥스’(Mad Max) 아닌가. 하지만 개운치가 않다. 영화가 끝나고도 희망이 끝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외국인 학생에게 “한국어능력시험에 도전하세요. 밑져야 본전이니까”라고 했더니 이 학생은 ‘미쳐야 본전’이라고 알아듣는다. “미치도록 뭔가에 빠지면 본전은 건진다는 얘기죠?” 밑지지(손해 보지) 않으려고 미쳐 날뛰는 사람들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그 젊은이의 창의적 경청에 감탄하게 된다.

 미치겠다는 사람이 주변에서 늘고 있다. 미쳐야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돌아버릴 지경이라는 하소연이다. 이 와중에 뜬금없을지 모르겠다. “미칠 대상이 있다면 좋은 거 아닌가요?” 실은 무엇에 미쳤느냐가 중요하다. ‘매드 맥스’의 감독은 영화에 미친 자다. 사랑에 미친 자들은 유행가도 점령한다. “너는 내 여자니까/ 네게 미쳤으니까/ 미안해하지 마/ 난 행복하니까.”(싸이 작사·작곡 ‘내 여자라니까’ 중에서)

 성공한 연예인들의 인터뷰 단골 메뉴. “미친놈 소리 많이 들었죠.” 어디 연예계뿐이랴. 어떤 분야건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 치고 미쳤다는 얘기 안 듣고 그 자리까지 온 사람은 드물 거다. 그런데 문제는 예술에 미치고, 사랑에 미친 게 아니라 엉뚱한 것(유한한 권력)에 정신 줄을 놓은, 그야말로 ‘돌아버린’ 자들이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미친 자들은 대체로 말이 많다. 그것도 함부로 한다. 사람들을 지치게 만드는 게 미친 자들의 특기다. 반대로 남을 위해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 남을 향한 생각이 남을 향한 말보다 길고 그윽하면 거기서 향기가 난다. 자비로운 부처님껜 죄송하지만 이 미쳐 가는 세상에 살아남아서 희망을 되살리려면 일단은 미친 척해야 하는 게 아닐까 조바심이 든다. 그렇게라도 해서 가까스로 정상 부근에 미친(도달한) 후에 ‘사실 나는 미치지 않았다’고 고백하면 사람들은 믿어줄까? 오늘 밤 ‘비정상회담’에 안건으로 올리고 싶다. “세상을 정상으로 만들고 싶어서 비정상이 되어 가는 나. 정상인가요?”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