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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테슬라 전기차, 우주왕복선 …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이 사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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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일론 머스크는 지난해 우주 왕복선 ‘드래곤 V2’를 선보였다. 이 우주 왕복선은 현재는 무인이지만, 최대 7명이 타는 유인선으로 업그레이드된다. [블룸버그 뉴스]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에슐리 반스 지음
안기순 옮김, 김영사
584쪽, 1만8000원

우리는 어렸을 때 누구나 상상을 한다. ‘달나라에 큰 기지를 만들 꺼야’ ‘커다란 로봇을 만들어 우주괴수로부터 지구를 지켜야지’ 등등.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추억이란 꼬리표와 함께 그 상상을 기억의 구석으로 치워버린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달랐다. ‘다른 행성에 인류의 식민지를 건설한다’는 어린 시절 꿈을 현실로 착착 만들어간다. 처음엔 비웃었지만 이제 온 세상이 그가 언제 이룰지 지켜보고 있다.

 ‘1000억 달러의 사나이’ 일론 머스크(44) 얘기다. 미국의 과학기술 작가 에슐리 반스가 쓴 머스크의 첫 평전을 읽은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는 뭘 꿈꿨지’였다.

 그가 창업했거나 운영하고 있는 스페이스 엑스(로켓), 테슬라 모터스(전기차), 솔라시티(태양광 에너지)를 보자. 다들 포기했던 아이템이다. 우주항공은 냉전이 끝난 뒤 관련 예산이 줄면서 퇴색했다. 현재 로켓 발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러시아는 1960년대 처음 나온 로켓을 아직도 쏘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여전히 힘을 못 쓰고 있다. 대체에너지 시장에 뛰어든 투자회사들은 낮은 경제성 때문에 모두 손을 털고 떠났다. 보잉·포드 등 기존 거대 기업은 규제와 관료주의로 텃세를 부렸다.

 그런데도 머스크는 모두를 압도했다. 테슬라 모터스는 차선의 타협안이라는 하이브리드(전기+내연기관)를 거절하고 바로 전기차에 도전해 성공을 거뒀다. 스페이스 엑스는 상당수 로켓 부품을 미국 공장에서 자체 제작하면서도 가격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생산 비용이 비싸다며 다른 나라로 공장을 옮겼던 다른 미국 제조사를 비웃듯이 말이다. 게다가 탑재물을 우주로 운반했다가 지구 발사대로 정확하게 되돌아오는 우주 왕복선을 개발한다고 나섰다. 로켓 1단 기체를 회수해 재사용하면 비용을 더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지난달 시험 발사는 실패했다) 솔라시티는 파격적인 대여료로 미국 주택의 지붕을 태양광 패널로 바꿔가고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과 로켓을 자동으로 발사하는 우주 공항을 짓고 있다. 머스크가 계획한 대로 2030년 화성에 8만여 명이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가 만든 미래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이쯤 되면 무섭기까지 한다.

 어떻게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물론 엄청난 재력의 뒷받침이 있다. 여기에 그의 마케팅 기술, 교묘한 책략, 공학적 지식도 빠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불굴의 정신력이다. 가장 어려울 때도 미래를 약속하는 배짱, 집요한 추진력, 강렬한 투지, 타고난 낙천성이다. 거의 미쳤다 할 정도로 위협을 마다하지 않는다. 결실을 맺든지 쪽박을 차든지 둘 중 하나다. 그러기 위해선 기꺼이 재산을 잃을 각오가 돼 있다. 실제로 요즘 그의 재산은 2002년 스페이스 엑스 창업 이전보다 줄었다고 한다. ‘머스크는 돈을 벌고 있는 게 아니라 미래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머스크는 전혀 모르는 분야에선 전문가와 대화를 통해 지식을 빨아들이다. 독서량도 엄청나다. 스페이스 엑스 창업 무렵 구 소련의 로켓 운용 매뉴얼을 이베이에서 사서 읽었다는 얘기도 있다. 현장에선 문제를 해결할 땐 멋지게 차려 입은 이탈리아제 명품 옷이 온통 얼룩져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후 11시에 집에 와서도 일한다. 새벽 2시30분에 이력서를 e메일로 보낸 구직 지원자에게 30분 만에 장문의 답장을 보낸다. 아프리카 휴가 후 말라리아로 열흘간 사경을 헤맨 뒤 얻은 교훈은 ‘휴가를 가면 죽는다’는 것이란다.

 천억장자(千億長者)인 그지만 여러 번 파산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친구들에게 돈을 꾸러 다닌 적도 있다. 구글의 창업주인 래리 페이지에게 테슬라 모터스를 넘기는 걸 고려하기도 했다. 쿠데타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쫓겨나고, 임직원들이 반발해 단체로 회사를 떠난 적도 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다른 사람 앞에선 약한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임직원에 대한 과도한 작업 요구와 직설적 비판은 일상이다. 그의 지시사항을 이행할 수 없다는 임직원에겐 늘 “자넨 빠지게, 내가 할께. 동시에 두 회사 CEO 일도 할 테니까”라고 쏘아붙인다. 시제품을 주말 동안 집에서 시범 주행하고는 월요일 출근해서 80가지가 넘는 개선점을 지적한다. 메모 없이도 모든 걸 기억해 꼼꼼하게 진행사항을 점검한다. 이것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선 필요하다고 믿는 게 머스크다. 일종의 확신범이다.

 호사가들은 테슬라 모터스란 사명(社名)이 그의 불길한 미래를 암시한다고 쑥덕인다. 토머스 에디슨보다 더 혁신적이었지만 그와의 경쟁에서 패한 니콜라 테슬라가 연상된다는 이유에서다. 머스크의 제국은 유인 우주선이 폭발하거나, 전기차 대량 리콜로 한순 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게다. 지금도 머스크가 어디선가 엉뚱한 공상으로 임직원을 닦달하고 있는 한 말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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